남들 다보는 영화가 아닌, 특별한 영화를 보며 연말연시를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작은 영화제가 많이 준비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아트시네마(구 헐리웃 극장, www.cinematheque. seoul.co.kr)에서 연말까지 열리는 ‘카를로스 사우라 특별전’이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 (Carlos Saura, 1931년 생- )의 대표작 11편을 감상하고, 설명도 들을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영화제다. 내년 초까지 전주, 제주, 대구, 대전, 광주에서도 순회 상영될 예정이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은 스페인하면 떠올리게 되는 플라멩코와 음악을 소재로 한 화려하고 격정적인 뮤지컬 무용극인 <피의 결혼식 Bodas de sangre>(1981), <카르멘 Carmen>(1983), <마법사를 사랑하라 El Amor brujo>(1986)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에도 스페인 향취 물씬 풍기는 이 무용 영화들이 TV에 방영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국내 극장 개봉과 비디오 출시로 이어진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작품은 후기작에 치우쳐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네 젊은이의 비극을 그린 <질주 Deprisa, Deprisa>(1980), 성폭행당한 여성의 복수극 <안나 이야기 i Dispara!>(1993), 택시 운전의 액션을 통해 현대 스페인의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는 <택시 Taxi>(1996), 펠리페 2세 시대의 전설적 정복자 아귀레의 아마존 여행에 기초한 장대한 모험극 <엘 도라도 El Dora do>(1988), 탱고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는 극중 극 형식의 <탱고 Tan go>(1998)가 그것이다.
따라서 초기작에서부터 국내 미 개봉 작품이 망라된 이번 특별전은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작품 세계는 물론이고 스페인의 전통과 문화, 역사,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상을 많이 탄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라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한 의상과 애절한 음악, 유려한 카메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무용 영화와 음악 영화는 티켓 값 비싼 오페라나 음악회에 가는 이들을 부러워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을 ‘현실 참여’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던 초기작, 즉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시대를 은유와 상징으로 고발한 작품들 또한 우리 현대사와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쉽고 사실적인 작품들이다.
11편의 상영작 중, 무용과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 목록은-플라멩코판 카르멘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제 원작 이야기가 재현된다는 극중 극 형식의 <카르멘>, 네 집시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안토니오 가데스 출연의 <마법사를 사랑하라>, 스페인 내전 시의 군부대 위문단 사연을 그린 <아, 카르멜라! Ay, Carmela>(1990), <탱고>, 스페인의 스타 무용수들이 스페인의 저명한 음악가 이삭 알베니즈를 기리기 위해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엔리코 모렌테의 음악에 맞추어 숨 막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베리아 Iberia>(2005), 포르투갈의 대표 음악 파두를 담은 <파두 Fados>(2007).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시대를 고발한 초기작은-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네 남자가 스페인 내전 터에서 사냥하는 것을 통해 폭력의 시대를 고발한 <사냥 La Caza>(1966), 어머니 유골을 옮기기 위해 고향을 찾은 중년 남성의 회상을 통해 스페인 내전이 남긴 상처를 이야기하는 <사촌 앙헬리카 La Prima Angelica>(1974), 9살 소녀가 목격하고 상상하는 어른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과 슬픔을 통해 프랑코 독재 시대를 고발한 <까마귀 기르기 Cria cuervos>(1976).
그 외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기 영화 <보르도의 고야 Goya en Burdeos>(1999)와 두 가문의 비극을 그린 <일곱 번째 날 El Septimo dia>(2004)이 상영된다.

옥선희┃영화칼럼니스트 blog.naver.com/easto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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