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보다 앞서 오는 것
유하 감독의 <쌍화점 霜花店>은 2008년 전반기 흥행을 책임져야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짐을 이어받아야할 하반기 최고 기대 작이다. 두 작품 모두 서부 활극 코미디와 시대극이라는 눈요기 거리 많은 장르를 택해,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었고,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런 작전은 화제 거리를 만들며 흥행의 일정 부분을 담보할 게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규모로 승부하려는 태도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쌍화점>은 고려 공민왕을 중심으로 하여, 동성애와 이성애의 삼각관계에서 빚어지는 비극을 두 시간 넘게 그린다. 무엇보다 <미인도>에 못지않은 노출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역사 속 인물을 이렇게까지 발가벗겨도 좋은가, 사극은 겹겹의 옷을 벗기기 위한 장르로만 채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자아낼 정도다.
특히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에서 공민왕(주진모)과 홍림(조인성)이 진한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 장면이나, 홍림의 전신을 훑어 내리는 이성애 장면은 한국 영화의 러브 씬 연출이 직설적이고 단순하며 상투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러브 씬 연출의 궁극을 보여준 이안 감독의 <색, 계 色, 戒>(2007)엔 전라를 훑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카메라와 편집이 없었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포르노로만 러브 씬 연출을 눈동냥 했는지, 부분적으로 은밀하게 슬쩍 내비치는 리듬감 있는 편집이 더 큰 흥분을 자아낸다는 걸 알지 못한다.
조인성은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과 동안의 미소년 상으로 모성애를 자아내는 한편, 가늘고 긴 몸매로 모델 같은 현대적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다. 이런 분위기의 청춘스타의 전라는 거미 인간 같다는 느낌만 자아낼 뿐, 성적 매력은 전혀 풍기지 않는다. 아니 벗음만 못한 결과다. 노출과 러브 씬 연출에 관한 불만을 빼면 <쌍화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정신적 연대를 먼저 떠올리며 또 정신적 사랑을 높이 대접하지만, <쌍화점>은 육체 탐닉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솔직하고 분명하게, 육욕에서 비롯된 사랑의 감정을 그린 우리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쌍화점>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저울질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레즈비언이 아닌 호모를 이성애와 동등하게, 대담하게 그린 영화는 <쌍화점>이 처음이지 싶다. 한국 관객, 특히 남성 관객은 레즈비언에는 조금 관대해졌지만, 호모에는 몹시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다. 여성 관객이 레즈비언을 해방의 카타르시스로서 환영하고, 호모도 이해는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런 한국 현실에서 동성애가 이성애 못지않게 크고 아름답고 너그러우며 집요하고 잔혹하고 슬플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진 담대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원나라 사신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할 만큼 힘없는 고려의 왕 공민왕(주진모). 원나라 출신 왕후(송지효)와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왕권이 더욱 위태롭다는 점을 알면서도 공민왕은 왕후를 품지 못한다. 공민왕에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호위 무사로 키워진 건륭위의 수장 홍림(조인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후사 문제를 등한시 할 수 없었던 공민왕은 홍림에게 왕후와의 합궁을 명한다. “왜 하필 저입니까”라고 묻는 홍림에게 공민왕은 이렇게 답한다. “너처럼 다정한 아이가 나와야하지 않느냐.” 젊은 홍림은 왕후와의 합궁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고, 이를 지켜보는 공민왕의 마음은 만 갈래로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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