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기업이나 조직이 갑자기 심각한 혼란과 침체에 빠지는 경우,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성장속도와 관리역량의 부조화로 인한 성장통(growing pain)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기업은 조직의 성장단계에 따라 적합한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하는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일종의 조직 ‘엉킴 현상’이 나타난다.
성장통의 징후는 구성원들이 시간에 쫓기지만 성과는 높아지지 않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조직 피로현상이 누적되어 급기야 조직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되고 유능한 인력이 조직을 이탈하는 현상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간 비교적 경영 성과와 보상도 괜찮았고 고속 성장 기업으로서 명성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경우 CEO는 당혹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저기 조언도 구해보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하지만 인간과 조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없이 대중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자신이 경영자로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 전문가로부터 조언도 듣고 또 열심히 노력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CEO가 조찬 세미나에서 명강사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서 자기 조직의 상황이나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려고 하는 경우 소위 ‘조찬 경영자 신드롬’이 나타나기도 한다. 직원들이 저항할 경우 혁신 마인드 부족이라고 질책하면서 강압적으로 시행하려고 하다 보면 조직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성장통, 성장속도·관리역량 부조화 탓

통증이 심해지면 비싼 돈을 들여 전문가로부터 경영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직 딜레마의 원인이 CEO 자신에게 있는 경우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는 이상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자수성가형 창업기업가는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하며 자기 방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막상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면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을 도입하면 CEO의 재량권이 대폭 축소되면서 창업기업가의 강점이 사라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변화를 시도했다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 되다 보면 구성원의 조직 피로감이 증폭하는 ‘지침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이 ‘엉킴과 지침’이 누적되면 조직의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쇠퇴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지속가능 공동체 유지로 극복해야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하면 리더는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에 의존해서 조직을 꾸려가게 된다. 가장 선호하는 부하는 CEO 자신의 권력에는 위협이 없으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조직을 움직여 줄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충성심과 능력이지만, 이 두 가지를 다 갖춘 부하 직원은 많지 않다는데 리더의 고민이 있다.
CEO가 자만심에 빠져서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자신의 뜻에 맹종하는 사람을 선호하게 되면 그 조직의 병증은 깊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리더는 직언을 해주는 부하직원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껄끄러워 한다. 특히 상황적 여건에 의해 리더의 권력과 권위가 약화되는 상황에서는 자신을 하늘같이 떠받드는 충성스러운 부하에 대한 감정적 쏠림을 극복하기 어렵다.
성장의 딜레마를 극복하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조직의 성장단계나 규모에 따라 적절한 경영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며, 균형잡힌 리더십 팀이 형성되어야 한다. 창업기업가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도 건설적인 조언과 함께 조직 전체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최고 경영팀의 존재야 말로 건강한 조직 성장의 핵심 요소이다.
성장조직의 딜레마는 기업과 같은 사적 공동체뿐만 아니라 국가와 같은 공적 공동체에도 나타난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도 빠른 경제성장에 비해 사회 시스템과 문화 발전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지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국회와 정치권을 비롯 우리 사회의 상황을 보면 ‘엉킴과 지침’ 현상으로 인한 국가 쇠퇴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회 곳곳에 지속가능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함께 현명한 리더십 팀의 형성이 절실한 때이다.

한정화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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