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억새 능선으로 유명한 민둥산 자락. 고랭지채소와 나무가 없는 벌거벗은 산. 그저 봄이면 산나물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가을이면 산 정상부에 넓지 않은 억새능선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 그 자락에는 몇 개의 맑은 계곡과 삼내약수 그리고 산자락에 기대 살면서 ‘기’치료를 하는 기림산방이 숨어 있었다.
두해전 즈음 기림산방(033-591-5469)이라는 곳을 소개받은 이후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행채비를 차렸다. 정선읍에서 남면을 향해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들어가면서 기림산방에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
정선 남면 유평리 산속에서 둥지를 틀고 살던 주인내외는 연로한 부모님 탓에 남면에 방을 얻어두고 이중생활(?)을 한다고 한다. 약속날짜보다 하루 앞당겨 내려온 일이라서 주인내외도 당황한 듯하다. ‘벌어곡’이라는 자그마한 정선선 역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장지기 김종수씨, 그리고 그의 아내, 딸 둘과 함께 나와 아직도 눈이 쌓여 있는 위험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판하나 없어서 웬만한 호기심이 아니고서는 찾기도 힘들 위치다. 입구에 다달아서야 나무 판대기로 쓴 氣林山房이란 간판이 나설 뿐이다. 어려워야 그 가치가 더 빛이 난다는 논리일까? 그래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서는 도로변에 팻말 하나는 세워둬야 할 것 같다.
집앞에 이르면서 도로는 차라리 걷는 것을 택하고 싶을 정도로 눈길의 빙판이 심했고 굴곡 또한 심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면 이용한다는 옛집 한 채, 그리고 나무다리를 건너면 본채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얼키설키 건물 두어칸을 더 만들었고 언덕위에 조립식으로 된 강당도 만들어 두었다. 계곡 위로는 여름철에 이용할 원두막도 한 채 있다.
연고지 하나 없던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10년이 넘게 이뤄놓은 자연의 방패막이다. 집앞으로는 눈쌓인 민둥산이 하늘과 맞닿아 있으며 지는 햇살에 반짝 빛을 낸다. 마당에는 쉴 수 있는 나무의자도 만들어 두어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 아래 첫 동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깡촌’. 보이는 것이라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새하얀 눈 옷을 입은 겨울산. 딱정벌레처럼 나지막한 화전민집 두 채.
어릴적 고향집을 그대로 연상케 하는 흙집 한 채. 방은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다. 강원도 집들이 그렇듯 부엌과 외양간이 같이 있는 형태지만 소우리는 없다. 뭉실뭉실 김이 나는 솥단지가 두 개. 아궁이는 한군데다. 밭솥과 국솥이다. 필요에 따라 알아서 불을 지피면 된단다.
뒤켠으로 가면 산에서 끌어다 쓰는 약수터 형태의 수돗가가 있다. 그저 퍼마셔도 좋을 정도로 맑은 물이다. 방안은 제법 넓다. 벽을 다 없앤 형태로 너댓칸의 조막만한 방안에는 이불이 곱게 접혀 있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가고 있을 즈음 이들 부부는 차를 준비한다. 뒤켠의 약수터에 있는 물을 마시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봤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찬물은 일절 먹지 않는 것이 이들 부부의 건강방식이기 때문이다.
김종수씨의 건강방식은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고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술과 담배 등에 대한 논리에 있어서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그의 지론은 술과 담배과 굳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의 논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면 담배가 필요한 때는 몸에 음기가 강해지면서 따뜻한 담뱃불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서 도움이 되지만 과음은 안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손으로 물건을 전달하면 단전에 힘이 들어가고 존댓말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기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산에 미친 산꾼 김종수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하면서 그저 평범하게 살던 도회민이었다. 그러다 홀연 서울을 떠나왔고 지난 95년 전국의 장수노인 3백여 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들을 밀착 취재한 결과 장수비법은 보약이 아니라 ‘바른 생활’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장수노인들로부터 얻은 건강비법은 의외로 쉽다. 생활 속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누구나 알 것 같은 건강상식들이다.
이곳에서는 건강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두고 있다. 처음에는 4박5일정도였지만 지금은 2주간으로 기간을 늘렸다. 자고 먹고 생활하는 것이 전부다. 거창한 건강비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생활자세 교정, 예절 갖추기, 노동 등 초등학교의 바른 생활 수준정도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면 어느새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가격은 5십만원. 이미 기림산방을 다녀간 사람만 3천여 명에 달한다. 직장인, 학생, 주부, 교수, 성직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왔다갔다고 한다.
단골고객은 주위가 산만한 학생들. 그는 정신교육과 육체노동 그리고 자세교정을 통해 인내력과 집중력을 키운다. 전자오락에 미친 학생들, 공부에 취미없는 학생들을 방학동안에 집중 훈련시켜 대학에 입학시킨 경우도 수두룩하다. 교육프로그램도 강의 시간도 따로 없다. 처음에는 차 마시는 법부터 가르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루 10여 잔은 기본. 다음은 앉는 자세, 걸음걸이, 묵언(默言) 그리고 기체조 등으로 심신을 단련한다.
9살 터울의 산사나이와 비구니와의 만남.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만난 부부의 이야기. 지금은 아이가 넷이나 되었다. ‘기’센 산자락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터전을 일궈가고 있다.
이 집은 주인이 따로 없다는 말처럼 그저 편안하게 호기심으로 둘러봐도 좋을 곳이다. 날이 풀리고 야생화와 산나물이 피어나면 다시 한번 가볼 것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대중교통 : 서울에서 증산까지 가는 열차가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새마을호 1회, 무궁화호는 각 4회가 있으며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4시간20분 정도.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로 진부IC-33번 국도(32.9km)-나전-42번 국도(9.4km)-정선읍에서 33번 지방도-(26km)가다가 남면 삼거리에서 우회전-38번 국도-남면 벌어곡역 못미쳐 삼내약수터를 팻말따라 좌회전-비포장길이다. 입구에 간판이 있다. 곧추 직진해 비포장길 달리면 삼내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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