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이다. 설이 주는 미덕을 잘 표현한 시로 마음에 쏙 와 닿는다. 그 설이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왔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아이들은 벌써부터 이런 노래를 부르며 설날이 어서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설과 함께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니 사람살이에서 설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즈음 남녘에서는 봄소식이 들리고 가정부인들은 명절 준비에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
설날을 앞두고 인구의 절반이 고향을 찾아간다. 매스컴에서는 이를 두고 민족의 대이동이니 귀성전쟁이니 하면서 서슴없이 ‘전쟁’이란 말을 쓴다. 명절 중에서도 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은 까닭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게 된다. 매년 돌아오는 설, 즐거워야 할 설이지만 올해는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썩 기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모처럼 모인 가족들과 무엇을 하며 보낼지 벌써부터 계획을 짜보게 된다.
설날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설빔으로 차려 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세배도 다니고 바깥나들이를 한다. 한 해의 출발이기에 설날의 기쁨은 더 크다.
설날 아침, 온 가족이 함께 설빔으로 갈아입고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를 올린다. 차례가 끝나면 웃어른께 세배를 올리는데, 떡국을 먹기 전에 하는 것이 바른 예법이다. 세배는 정월 초하룻날에 하는 새해의 첫 인사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뒤 일가친척이 모여 앉아 먹는 떡국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설날에 흰 떡국을 끓여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사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쓴 것이며 떡이 둥근 것은 둥근 태양과 관련이 있다. 떡국을 먹는 풍습은 지난 해 조상님과 어른들께서 잘 돌봐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새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미풍양속이다.
설은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명절이지만 도시화, 핵가족화가 급속히 번지면서 명절의 참뜻이 바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국민의 절반가량이 설날에 화투나 카드 등 도박성 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어느 여론 조사는 많은 걸 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여성(주부)들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음식 만들기, 차례 준비하기, 상차리기, 설거지하기, 집 안팎 청소하기 등 잠시 쉴 틈이 없다. 그래서 ‘명절’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주부들도 많다.
고향이 있어 즐거운 설. 경제 위기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설은 설이다. 설이 오면 그리운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위해 긴 귀향 행렬을 이룬다. 특별히 가야 할 고향이 없는 대도시 토박이나 실향민들에게도 설은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지만 설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묘한 힘이 있다. 바다에서 살다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났던 강을 찾아 긴긴 여행길에 오르는 연어처럼, 고속도로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고향으로 가는 발길은 멈추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가. 기다림과 설렘과 기쁨과 만남이 있기에 고향길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멀리 혹은 가까이에 또는 마음속에 포근히 자리한 고향집. 때 묻지 않은 유년 시절로, 가장 순수한 자화상으로, 우리네 고향은 늘 그곳에 있다.

김동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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