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많기로 소문난 태백산(1,567m). 해마다 1월말이면 ‘눈축제’(올해 1월 30일-2월 8일)를 연다.
올 겨울은 가뭄에 이상고온 현상으로 예년같지는 않지만 눈축제는 어김없이 열렸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겨울 산행을 나선 것은 새로운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경기에 대해 한가닥 빛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마음속으로 다가선다.
태백산 천제단에 오른다 한들, 답답한 일상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 신정, 구정 다 지나버리고 났으니, 아무리 나이 한 살을 안먹으려고 발버둥 쳐 봐도 시간은 흐르고 있을 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태백산을 가고 싶진 않다. 오로지 사심없이 희망찬 한해를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강원도는 예년과 달리 이상하리 만치 눈이 많지 않다. 그래서 설경이나 설화를 따로 기대한 것도 아니다. 겨울철 태백산에 오르기는 이번이 세 번째.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기에 준비물조차 미흡하다. 필히 준비해야할 아이젠도 갖추지 않은 채로 사길령 코스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태백산 산행 코스는 크게 네군데로 나눌 수 있다. 최고 높은 지점인 사길령, 유일사, 백단사, 당골지구 순으로, 고갯길 아래로 내려가면서 산행길이 이어진다. 그중에서 가장 짧은 코스가 사길령이다. 능선을 따라 가기 때문에 그다지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된다.
주차장을 지나 약간의 경사도를 느끼면서 고갯길을 오르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밭떼기를 만난다. 누군가 심어 놓았을 배추밭은 수확을 거두지 않았는지 고사된 채로 밭을 채우고 있다. 이어 산 밑으로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2,000원)을 내고 울창한 낙엽송 숲을 걷는다. 능선길이라지만 1천고지가 넘는 산정에 오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데, 이상하리 만큼 힘겹지가 않다.
예측컨대 태백산의 정기가 온 몸을 휘감아 오면서 기운 나게 하는 것 아닐까? 산신을 기리는 듯한 한칸짜리 전각과 이정표를 만난다. 겨우 0.5km 오른 지점이다. 이곳에서 4km 넘게 아무 생각없이 걸어야 한다.
단체로 온 등산객들을 스쳐 지나기도 하고, 그들을 앞질러도 간다. 양지바른 곳 이외에는 눈길이고 내림 길은 더욱 힘겹다. 왼쪽 관절이 이미 망가져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7~8부 능선까지 올랐을까? 눈에 띄게 주목나무가 많아진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나무. 태백산이 유명 자생지다. 긴 세월 산정부근을 지키며 굳건하게 서 있는 주목나무. 한 치도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칼바람이 불어대는 그 곳에서 거푸 몇천년을 버티고 있는 심지 굳은 나무 인 것이다.
흘린 땀방울에 조갈도 사라졌지만 입을 축이기 위해 꺼낸 물병은 얼음물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너무 추워서 방바닥을 뒹글고 쉬던 그 며칠이 아득하게 그리울 지경이다. ‘왜 이렇게 힘든 산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천제단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뗀다.
겨울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맑다. 잠시 고개를 돌려 함백산도 가늠하고 삼수령 매봉산 풍력단지를 살펴본다. 꽁꽁 얼어붙은 손 탓에 엄두 못냈던 카메라를 배낭 속에서 꺼내 목에 건다. 정상 부근, 태백산의 최고봉인 장군봉(1,567m)에 있는 돌제단이 눈앞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켜켜히 잘 쌓아놓은 제단 안에는 사탕, 귤, 북어 한 마리 등등. 제물을 바치지 말라고 했음에도 인간이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결국 이 제물은 산짐승의 먹이나 쓰레기로 변할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원하는 마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조금 더 능선을 걸어보면 또다른 제단이다. ‘한배검’이라는 돌에 새겨진 붉은 글씨.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로 천제단이다. 켜켜히 잘 쌓은 천제단(중요민속자료 제228호).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원형제단. 태백산은 신라 때에 오악가운데 북악으로 정해 왕이 친히 종사의 제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곳.
손끝 아리는 칼바람을 무릅쓰고 태백산 돌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기원’이라는 것을 어찌 나쁘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득 이 태백산 정기를 힘들고 힘든 중소기업 모두에게 불어 넣어주고 싶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 태백산 정기만이라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글을 읽는 모든 중소기업 사장님에게 ‘태백산 정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드디어 하산길. 남동쪽에는 수많은 바위로 이뤄진 문수봉(1,517m)을 뒤로 하고 망경사 길을 택한다. 너무 가파라서 단종비각도 그냥 지나친다. 시린 무릎은 내리막길에서 오금을 저리게 한다. 어렵사리 도착한 망경사. 기도객들로 득실거리던 그곳은 평일이라서 다소 한적하다. 용천은 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따뜻한 오후 햇살이 절집으로 스며든다.
망경사는 태백산 9부 능선인 1500고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월정의 말사이기도 하다. 652년(신라 진덕여왕 6) 자장이 창건한 천년고찰. 하지만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건물이나 문화유적은 따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이어 반재까지 내려오는 길은 악몽과 같다. 엉거주춤 내려오는 폼새가 안타까웠던지 등산객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힘겨운 상황에서의 친절은 고마움이다. 한쪽 손을 내어준 낯설은 사람이 이 순간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당골로 하산. 그곳에는 눈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겨울 태백산. 너무나 유명해서 축제 때는 교통체증까지 불러 일으키는 곳이지만, 신령스러운 기운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여행정보
● 주변볼거리:태백산 설경 산행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시발점인 황지연못과 구문소가 있으며 용연동굴, 추전역이 있다. 거기에 올해 오투리조트(www.o2resort.com) 스키장이 개장한다. 또 통리에 있는 미인폭포나 대이리 대금굴등을 연계하면 좋다.
● 찾아가는 방법:태백을 목적으로 찾아가는 길은 여러가지다. 동해나 삼척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정선이나 영월-상동을 통해 들어올 수도 있다. 정선방면에서는 고한에서는 414번 지방도 이용해 정암사 들러 만항재를 넘어서면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와 만난다. 태백선 눈꽃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추천 별미집:태성실비식당(033-552-5287, 연탄불 한우구이, 태백시내), 경성 실비식당(033-553-9357, 한우, 태백시내), 김서방 닭갈비(033-553-6378, 닭갈비, 태백시내), 한서방 칼국수(033-554-3300, 칼국수와 콩국수, 통리 미인폭포 가는 길목), 태함식당(033-552-5252, 연탄불 곱창구이), 산골식당(033-553-6622, 한식류,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등이 괜찮다.
● 숙박정보:모텔이나 민박, 찜질방 이용. 태백시 홈페이지(033-552-1360, www.taebaek.go.kr) 참조.


-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