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에서 항주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정확치 않지만 대륙의 땅 중국에서 1-2시간의 이동은 아주 짧다고 해야 한다. 소주와 항주는 그렇게 가까이 있는 곳으로 항상 함께 붙어 다닌다고 할 수 있다. 부산스럽게 항주를 찾은 것은 송성가무쇼를 감상하기 위함이다. 보기 싫다고 마다할 수 없는 단체여행의 특징. 별로 내키지 않지만 항주의 첫걸음은 송성가무쇼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계 3대 쇼중의 하나라는 송성가무쇼. 송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으로 춤과 노래로 엮어 만든 가무쇼. 극단 주변으로는 우리나라 민속촌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인들은 전통복장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무협지를, 혹은 중국의 오래된 영화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쇼가 시작되기 전초전으로 야외에서는 경극 비슷한 공연을 하지만 사람들로 인산인해.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 그중 절반 이상은 한국인들 일 터다.
한국말 자막이 나온다는 말에, 어느 정도 이해력을 높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극은 여느 곳에서 보던 것에 비해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귀빈석 무대는 이동을 하면서 흥을 돋워주려 애를 쓰고 관객석에도 이슬비가 내리는 등 현란한 조명등을 쏘아대고 멋진 몸매의 무희들이 춤을 추고 전쟁극이 연출되지만 차라리 뒷날 보던, 실수 투성이의 서커스가 더 나았을 지경이었다는 것.
물론 모든 것은 느끼는 자에 따라 감흥이 달라지겠지만.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아리랑 공연이나 북춤이 이어지면서 슬그머니 객석을 빠져 나온다. 가게들은 심드렁하게 문을 닫아 걸고 있다.
항주는 2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6대 고도중 하나로, 백거이(백낙천)나 소동파 시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서호를 안고 있는 도시다.
수나라때 ‘항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졌으며 오나라, 월나라, 남송 모두 항주를 도읍으로 삼았다. 삼국지, 초한지 등에서 익숙한 지명이다. 그러니 ‘오월동주’, ‘와신상담’의 사자성어의 원천지이기도 하다. 필자는 항주하면 우선 떠오르는 미인이 ‘서시’였다.
중국의 4대미인을 꼽자면 양귀비를 연상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첫 번째 미인이 서시라는 것. 서시는 춘추말기의 월나라의 여인.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으면 그녀 얼굴이 강변을 비추었을 때 수중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 앉았다고 한다. 이후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나라와 월나라 시절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오나라 부차에게 패한 월왕 구천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했다.
그녀의 일화는 매우 많은데, 사랑없이 적국의 장수에게 팔려갔으니 기분이 좋을리 없다. 늘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미인의 행태인듯 유행처럼 따라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어쨌든, 그녀의 초상화도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미는 대단했던 것 같다. 그러면 이곳 여인들도 미인이 많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
이른 아침 오산(吳山) 성황각에 오르면서 춤을 추는 초로의 사람들을 만난다. 다른 곳과 달리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면서 건강을 다지는 모습이 생동감을 준다. 특히 울창한 숲에 뒤덮힌 오산은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이 오산은 서호 10경의 하나로 오나라의 왕 손권이 이 산에 진을 쳤었다 하여 오나라 ‘오’에 뫼 ‘산’을 붙여 오산으로 이름 붙여졌다. 항주의 가장 번화한 상업거리인 연안로 남쪽에 위치하며 시내까지 산줄기가 뻗어있다. 명향루, 성황각 등의 유명한 건축물 뿐 아니라 오래된 고목과 기암괴석들, 사원과 신묘, 소동파 같은 유명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물들이 많이 있다.
성황각은 남송과 원대의 건축 양식을 본떠 만든 7층짜리 건축물. 비록 1999년에 준공해 연륜은 느껴지지 않지만 높이 41.6m나 되는 멋드러진 건물이다. 성황각 1층에 걸린 “남송항성풍정도”는 모형작품에서 남송때의 위용을 느껴본다. 천여채의 가옥과 삼천 명이 넘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서호의 전설과 중국의 민간고사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도 있었으며 상업이 발달됐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제법 볼만하다. 야외의 나이만큼 종을 치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곳에서 종을 울려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성황각 위로 오르면서 바라보는 야트막한 구릉속에 들어선 집들과 항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는 것이 좋았는데, 여행내내 뿌연 구름이 가려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성황각 옆에는 명나라 때의 관리였던 주신을 모신 성황묘가 있다. 주신은 이곳의 안찰사로 재임하는 동안 청렴결백해 조금의 사심도 없었으며 소송을 원만하게 해결해 주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받았던 인물. 후에 주신이 명 성조에 의해 무고를 입어 피살되자 백성들의 원망을 잠재우기 위해 이곳 성황각에서 주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산 바로 밑에 있는 연안로의 상업로를 가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울며겨자 먹기로 포기하고 찾은 곳은 서호다. 항주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며, 미인 서시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라고도 불린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3개의 섬이 떠있다지만 너무 넓어 육안으로 보기에는 힘겹다. 의무적으로 배를 타고 서호 유람을 한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제스추어 여행 탓에 몸과 마음은 지쳐갈 뿐. 정작 서호의 한부분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호수를 떠나온다.
차는 또 이동이다. 항주의 유명한 녹차밭. 바로 용정차밭이다. 항주는 따뜻한 기후와 많은 강수량 덕택에 녹차의 재배지로 유명하며 그 생산량도 전국 제일이다.
중국 차의 위용을 알린 곳도 이곳 용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원나라 때부터 재배해온 용정차(룽징차)는 원래 용정이라는 샘물 이름에서 유래 하였다고 하며, 용정이라는 샘 주위에 용정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서 키운 차를 뜻하는 말이었다.
용정차는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참새 혀모양의 잎새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 ‘4절(四絶)’이라 호평 받고 있다. 기대가 없지는 않다. 버스는 차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간다. 구릉진 산비탈에 만들어놓은 차밭이 펼쳐지면서 녹차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차밭으로 지어놓은 집들도 근사하다.
실제로 이 차밭 주인들은 개인 골프장을 갖고 있을 정도로 부호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정형화된 차 판매점에서 차를 구입하진 않았다. 제법 규모가 느껴지고 영업도 잘하고 있지만 국산 차와는 모양새가 달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타까운 현실일 뿐이다.
항주에서 유명하다는 영은사 절집 감상도 하지 못했고 속살 한치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먼 길 상해로 돌아와 서커스 보고 5성급 숙박업소에서 깊은 잠을 청하고 다음날은 비행기 타는 내내 약방가고 농수산물 등 쇼핑만 하고 돌아선 여행. 그러니 여행이 즐거울 리 만무.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호불호도 가보았기에 느낄 수 있었지 않은가?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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