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몸사리기식 대출관행 ‘여전’

지난해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기준금리 인하조치와 유례없이 신속한 정책공조 체제를 가동,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리는 등 사태수습에 서둘러 나섰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나 생산현장의 중소기업은 자금사정이 여전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력부족, 판로난 등 고질적인 문제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뉴스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부터 한 달 동안 실시한 현장방문 조사를 토대로 국가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통해 현안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을 4회에 걸쳐 제시한다. <편집자>

[사례1] 수도권 인근 공단에 위치한 A중소기업 대표는 지난해 연말 은행으로부터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이 찾아와 은행지점 실적을 올려야 된다며 억지대출을 요구 받은 것. 돈이 필요치 않았던 A사 대표는 ‘제발 3일간만 대출을 써달라’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렸지만 정작 중소기업이 필요할 땐 외면하던 일이 떠오른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례2] 지난해 5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주물업체 B사. 이 회사 D사장은 정년퇴직을 앞둔 은행 지점장이 대출이 잘못될 경우 퇴직금이 환수되는 게 두려워 대출에 소극적이던 일을 경험했다. D사장은 “퇴직금 지급을 1~2년 보류시키고 대출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환수조치를 한다고 들었다”며 “정부가 아무리 면책특권을 주고 대출을 독려해도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산현장에 있는 중소기업으로 자금이 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중소기업 총력지원’ 선언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과 일선 은행창구에는 돈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은행권의 대출심사가 강화돼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으로 자금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돈맥경화가 지속되고 있다.

정책당국 금융시장 안정에 ‘올인’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해 10월 이후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지난해 8월 5.25%였던 기준금리는 올해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3.25%P가 내린 결과 2%에 머물고 있다.
이 같은 기준금리 인하로 국고채, CD금리 등은 하락추세에 있으나 중소기업의 대출금리는 같은 기간동안 0.95%P 낮아지는데 그쳤으며 회사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여전히 높다.
신용등급이 AA-인 회사채 금리는 같은 기간동안 7.19%에서 지난해 11월 8.36%로 오히려 올랐으며 올해 2월 7.17%로 겨우 0.02%P 낮아졌다.
반면 신용등급이 BBB-인 회사채의 경우 지난해 8월 10.09%인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올해 2월 12.4%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시중의 신용경색으로 자금난을 겪는데다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높아져 회사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출금리 인하에 느긋한 은행

시중은행과 거래하는 T사는 지난해 4월부터 변동금리 14%의 소액 신용대출을 사용하고 있다. 대출당시 5%였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현재 2%로 절반 정도 떨어졌음에도 T사가 적용받는 대출금리는 변동이 없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인하폭을 그대로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대출금리도 일정부분 내리는 게 정상 아니냐”고 밝혔다.
최근 금융권은 CD금리 인하로 예대마진이 줄어들자 담보대출 금리체계를 CD 단일금리체계에서 은행채와 예금금리까지 가중평균하는 방식으로의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은행채와 예금 금리가 CD 금리를 웃돌고 있는 만큼 새로운 방식을 적용할 경우 현재 4~5%대인 대출금리도 덩달아 인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성 확대는 최고경영자(CEO)와 부행장들의 경영 실적과 연관돼 금리인하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은행의 상반된 대응은 예대마진 확대로 수익성을 극대화 시키려 하기 때문. 이에 따라 은행의 과중한 예대마진 의존형 수익모델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은행들이 금리 리스크를 기업에게 떠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수익모델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성적 자금부족 처방없나

국내 중소기업들은 은행권 대출 비중이 80%에 달할 정도로 외부의존도가 높으며 그중 담보대출이 70%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유동성 공급확대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대출심사 조건을 까다롭게 운영하자 오히려 돈 가뭄이 심화되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 장기화로 매출이 줄어들자 은행은 일방적으로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해 정부가 기준금리를 내려도 중소기업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하고 대출이 거절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 54억원을 기록한 D사는 지자체 경영안정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시중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매출감소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이유로 대출이 거절된 경우. 이 회사 K 사장은 “매출감소의 직접적인 이유가 경영능력이나 기업경쟁력 하락 보다 외부환경요인 급변에 있음에도 매출감소를 이유로 운영자금을 대출 거절하는 것은 은행 본래의 기능을 도외시한 처사”라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들의 몸사리기가 중소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측면도 있어 기업들의 자구 노력 또한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업대출 연체율은 2.31%. 이중 중소기업 연체율은 0.97% 포인트나 급등한 2.67%로 2005년 5월 이후 3년9개월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한 돈은 45조원으로 전년 대비 20조원이 줄었다.

중소기업 자금난 물꼬터야

우선 은행들은 고객 이자 수익에 급급한 천수답식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조조정에 살아남기 위해 자기자본 비율을 확보하려는 은행 입장도 이해 하지만 정부가 보증공급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데도, 은행들이 제 앞가림만 하려 든다면 실물경제 위기를 증폭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 조사한 현장애로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최근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로 신용보증한도 확대와 100% 전액 보증제도 도입을 꼽았다.
이밖에 재무제표 위주의 신용평가방식 개선과 은행의 중소기업대출에 대한 면책기준 실질이행 등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담보, 재무평가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대출심사에 기술평가를 강화하고 기술중심 기업보증에 대한 담당자 면책조항 신설 등을 도입해 꽉막힌 돈줄을 터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본점에서 각 영업점 및 직원실적 평가시 보증사고율과 이로 인한 금융기관 보증채무이행 손실금액을 높게 반영하고 있다”며 “보증사고에 대한 직원 면책규정이 없는 한 안정성 위주의 보증업무 집행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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