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없이 여행을 떠난다. 그저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던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하다. 이 고질병, 역마살은 나이가 들어도 고쳐질 기미가 없다. 전주에 발길을 멈추었고 택시를 타고 이리저리 시내를 옛거리를 배회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한옥마을을 찾았다가 우연히 혼불 문학관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저 잠시 들르겠다는 것이었는데, 자료를 날리는 바람에 전주와 남원의 혼불 문학관에 두 번이나 발걸음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라고 말한 작가와의 짧은 인연이 너무 아쉬웠던 게다.

난 혼불을 읽지 못했다. 핑계거리로 ‘혼불’나갈까봐 안 읽는다고 말한다. 어릴 적 마을에 사람이 죽을 때면 ‘불이 나갔다’고 했다. 혼불의 저자인 최명희 작가도 5부작 10권의 혼불을 집필하고 나서 51세의 처녀의 몸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길고 긴 장편소설 읽을 여력이 없음을 단지 혼불 나갈까봐라고 합리화 시키면서도 문학관에 발을 내디디니 궁금증은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작가의 생가와 멀지 않은 곳에 만들어진 한옥 건물은 자그마하다. 문화해설사에게 설명을 듣는다. 단아한 단발머리, 시인 김남주 선생을 닮은 듯한 야무진 눈매, 약간 튀어나온 입가는 금세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듯한 그녀의 초상화를 보고 친필 원고를 살펴본다. 글씨체에서 그녀의 성격을 읽는다. 이렇게 잘 쓴 글씨를 본적이 있을까? 꼼꼼함이 글씨에 그대로 배어 난다.
해설사는 사진찍는 것에도 자유롭다. 시인 안도현을 형이라고 부르는 해설사의 직업은 묻지 않는다. 그저 ‘글쟁이’겠지 생각한다. 나중에 남원의 혼불문학관에서야 그의 직업은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라는 것을 듣게 되지만, 나의 직업을 말하진 않는다. 정작 궁금해하지도 않았지만, 글로 밥벌이는 하는 나로써는 혼불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창피했기 때문이다.
해설사에게 아주 간단한 지식을 얻는다. 위암이 아닌 난소암으로 숨을 거뒀고, 어릴적 너무 가난해서 백일장 대회란 다 나가서 학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를 둔 사람이 왜 그렇게 가난했느냐는 질문에, 식민시절 친일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전통있는 전주여고를 가지 않고 기전여고를 선택했던 이유도 장학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처녀로 죽은 작가가 너무 안타까워 살짝 애인에 대해서 물었더니 실제로 가까운 세 명의 작가가 있었고 한명은 아주 친밀했다는 것도 말해준다. 얼마나 다행인가.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웬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 설명이 못내 부족했던 것일까? 내쳐 남원의 혼불 문학관(063-620-6788, 사매면 노봉마을)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그녀의 육성이 가슴속을 파고 든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을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 달리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에는 온몸에 찌르르 소름이 돋으며 눈가에 이슬이 맺는다. 어쨌든 나 또한 작가라는 타이틀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문학적인 가치를 떠나 피 말리는 작업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필력을 갖고 싶은 것은 모든 글쟁이들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난들 정보만 알려주는 정보 작가로 생존하고 싶겠는가? 그게 안되는 것을, 그게 쉽지 않음을 독자들은 이해하려기보다는 필력의 높낮음의 잣대를 놓고 따져 판단하리라.
남원 사매면에 있는 혼불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폐장시간(오후 6시) 10분전. 퇴근을 준비하던 문화해설사는 나의 애원의 눈빛을 마다하지 못하고 설명해준다. 질문할 시간이 없다. 그녀의 시간을 많이 뺏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또다른 해설사를 만난다. 작달막한 키에 짧은 머리를 뒤로 넘긴 50대 정도의 여자 해설사.
평생 농사를 지었다는 굵어진 손마디를 보여주던 그녀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그녀에게 해설을 부탁하면서 책도 읽지 않은 채로 그녀의 정보를 뺏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날 궁금해 한다. 입가에 미소를 흘릴 뿐 차마 ‘작가’라는 타이틀은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 ‘역마살’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전한다. 그랬나? 긴 세월 어느새 내 몸속으로 역마살이 직업병처럼 배어 든 것이다. 한번 더 들으니 이해가 깊어진다. 일단 책 전반적인 스토리를 말해달라고 한다.
정작 혼불이라는 책은 단순히 스토리를 안다고 해서 알아지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책, 최명희 작가의 피와 살을 타게 만들어 17년간 혼신의 힘으로 집필한 ‘혼불’을 그저 스토리 아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는 내가 염치없다.
첫날밤 치루고 남편을 잃고 마는 청상과부 청암부인의 기구한 인생, 강모와 강실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갈등, 과부가 된 인월댁의 평생 베만 짜고 살아야 하는 숨통이 터질 것 같은 비현실적인 삶, 거멍굴 사람의 신분 상승의 꿈 등등. 해설사는 청암부인이나 강모의 부인을 비유하면서 덩치가 크고 남성적인 여자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공방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결국 여자는 예뻐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미인일 것 같은 강실이나 채만식 탁류에 등장하는 초봉이의 기구한 삶을 연상해보면 그녀들 또한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지 않은가? 소설은 결국 현실인 것이다. 지나치게 현실주의인 나는 자꾸만 등장인물을 현실로 끌고 나와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혼불은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 소설로,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인 사매면의 유서깊은 ‘매안 이씨’ 문중의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사의 격랑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가는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적, 인류학적 기록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아름다운 모국어로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그녀가 평소 즐겨 마셨다는 보이차 향 가득 입안에 가득 담고 그녀의 책을 읽고 있는 순간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혼불 문학관을 빠져 나온다.

■찾아가는 방법
호남고속도로 전주 IC나 익산 IC에서 빠진다. 전주 IC에서 곧바로 빠져나오면 좌회전, 시내로 들어가는 큰 길대신 왼쪽 외곽도로로 빠지는 2차선 길을 따라 내려간다. 17번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남원으로 이어지는 전주-남원 산업화도로. 사매면에 이르러 팻말따라 나가면 옛 국도와 만나고 우측에 팻말이 있다. 서도역-혼불문학마을(노봉마을).

■별미집과 숙박
남원에서 추천해줄 집이 우소보소(063-633-7484, 남원시 향교동, 백반)와 현식당(063-626-5163, 추어탕)이다. 선비고을(063-633-8932)도 있다. 전주를 이용해도 된다. 동문원(063-284-3339)이나 남문 시장에 있는 풍남 순대국집, 서신동의 옛촌 막걸리 집 등이 괜찮다. 숙박은 콘도나 모텔을 이용하고 녹주 찜질방이나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주천면 육모정 가는길 왼편에 남원 한증원(063-634-5555)이 24시간 운영한다.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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