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갖고 있는 감정을 희박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전남 장흥에서 첫 느낌으로 받았던 진한 감동은 아련한 추억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감정마저도 어느새 옅어져 버렸다. 봄향기를 애써 찾아내기 위해 무작정 남녘 들녘을 향해 내달려 간 곳중 하나가 장흥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자연은 봄향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다. 때가 지나쳐 들렀던 천관산의 장천재는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었다. 붉은 동백꽃 군락지에는 어느새 붉은 꽃이 땅밑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천관산(723m)내에 있는 장천재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다. 주변에 식당이 하나 더 들어섰을 뿐이다. 때 이르게 찾아온 등산객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이른 철이어서인지 매표소에도 사람이 따로 없다. 겨우내 산속 골골이 녹아내린 물들로 인해 계곡은 수량이 불어나 장관이다. 우렁찬 물소리를 내고 맑은 물을 쏟아내고 있다. 천관산의 물줄기임에도 장천재 계곡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장천재(長川齋)라는 장흥 위씨의 문각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인 존재 위백규선생을 비롯, 많은 유학자가 수학하며 후배를 양성한 곳이다.
원래는 장천암(長川庵)이라는 암자가 있었으나, 1659년 불사를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했다. 장천재는 개인 소유로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장천재 앞에 있는 보호수 고목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소나무의 일종으로 군나무인 이 나무는 수령이 8백50년이나 된 고목으로 큰 가지 하나가 하늘이 아닌 계곡을 향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또한 이 군나무 바로 앞에는 목도화교(木桃花橋)라는 다리가 있는데, 등산객 또는 계곡을 찾은 사람들에게 여행의 정취를 더해준다. 목도화교 역시 장흥 위씨 문중에서 설치한 다리다. 장천재는 500여년전 장천암터에 세운 것으로 위로는 계곡을 따라 청풍벽, 세이담, 추월담, 병풍암 등이 장천 8경의 비경을 이룬다.
무엇보다 계곡 사위를 둘러싸고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장관이다. 윤기나는 동백잎은 햇살에 빛이 나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동백꽃이 만발한다. 잠시 머물며 물소리 새소리에 취하고 떨어지는 꽃송이의 향취에 취해보면 좋을 곳이다. 등산을 즐겨도 좋고 이내 바다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다.
천관산 기슭의 회진포구는 유서깊은 항구다. 예전에는 제법 비중있는 항구였지만 지금은 발전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다. 갯벌의 김발이나 자그마한 몇척의 어선이 떠있는 한가로운 모습이 여느 포구와 다를 게 없다. 한때는 부산에서 여수를 거쳐 완도까지 다니던 연락선이 거쳐갈 정도로 규모가 컸었다. 30년대에는 장흥군내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날랐고 70년대까지도 대덕읍에 장이 서면 금당도, 금일도, 완도 등 인근 섬에서 장을 보러 들어왔던 곳이다. 회진포구는 80년대 들어서면서 그 기능을 이웃 마량포구(강진군 마량면)에 넘겨주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60년대 회진포구와 내덕도-우산도를 막은 덕산간척사업 탓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반듯한 밭뙈기 하나없이 바다에 목매어 살았던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 사업은 큰 희망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오늘, 주민들에게 꿈을 안겨줬던 간척지로 인해 내덕도를 중심으로 돌던 바닷물이 끊겼다. 포구밑에는 뻘이 쌓여 큰 배는 들어오지도 못하는 2종 항구로 전락했다. 그나마 바다낚시의 메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회진 앞바다는 강진만과 득량만이 합쳐지는 합수머리로 광범위하게 양식장이 형성돼 있다. 봄철에는 감성돔 등 다양한 어종의 산란장으로 꼽히는 곳이어서 배낚시터로서는 사시사철 최고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별히 볼 것 없는 어촌마을이지만 갈대밭 군락지는 장관이다.
또 이곳은 문학의 고장이다. 한승원(회진면 신상리), 이청준(회진면 이진목 갯나들), 송기숙(용산면 포곡리) 3명의 중견작가가 장흥 출신이다. 특히 한승원과 이청준은 회진포구를 사이에 두고 같은 해에 태어났다. 한승원을 기리는 돌탑이 신상리 2구라는 곳에 세워져 있다.
■대중교통 : 장흥읍에서 관산읍까지 수시로 직행버스 운행. 관산읍에서 택시 이용.
■자가운전 : 장흥읍에서 2번 국도로 강진 방면으로 조금 가면(길 왼쪽으로 장흥남초등학교를 지나친다) 감천교 바로 못미쳐 왼편으로 관산읍, 대덕으로 가는 23번 국도가 나온다. 23번 국도를 따라 좌회전해 16.8km 가면 관산읍이다. 읍에서 장천재까지 5km 거리. 다시 나와 회진포구에 들러서 신상 바닷가로 가면 한승원 시비가 있다. 길이 다소 어려우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바지락회로 소문난 맛집으로 수문해수욕장가에 바다하우스(061-862-1021)가 있다. 바지락은 봄철이 제맛이다. 장흥읍에는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싱싱횟집(061-863-8555)이 주민들에게 크게 소문난 곳이다. 숙박은 옥섬모텔(061-853-2420)이나 천관산자연휴양림(061-867-6974)을 이용하면 된다. 멀지 않은 율포녹차해수탕(061-853-4566 보성군)은 녹차와 해수를 이용해 건강 목욕을 즐길수 있고 풍광이 수려한 송림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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