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피기 시작한 봄꽃은 5월로 접어들면서 온 산을 분홍빛 철쭉꽃과 유채꽃으로 수를 놓는다. 파릇하게 새순 오르던 산하에 녹음이 조금씩 짙어지고 무 논에 심어진 벼들까지 합세해 초록물결로 일렁인다. 농익은 아카시아 달콤한 향이 코 끝에 번지는 날이면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신록 짙어져가는 마냥 행복한 봄날이다.

온 산하에 초록물이 들어 싱그럽다. 일상에 지친 뻑뻑하던 눈 피로가 초록 물에 정화되는 듯 맑아진다. 초록 물결에 풍덩 빠지고 싶은 날, 김제의 너른 평야를 떠올렸다. 필자는 올해 두 번이나 김제를 찾았다. 올 봄 두 번이지만 생각해보니 그 유명한 금산사 지구는 찾은지 참으로 오래됐다.
기억이 잠시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 변했는데 금산사 주변의 식당이나 절집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금산사(063-548-4441)는 호남 제일의 미륵신앙 도량이며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진 곳. 창건 당시에야 규모가 작았을 테지만 지금은 넓은 절 마당부터 사세를 읽을 수 있다. 신라 혜공왕(776년)때 진표율사가 중창해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니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다.
이 절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목조건물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미륵전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삼층법당. 겉보기에는 삼층이지만 들어가서 보면 모두 트인 ‘통층’ 팔작지붕이다. 미륵전 미륵보살상은 옥내 입불로서는 세계 최대라 하며 삼존불중 가운데 미륵불상이 11.82m, 좌, 우불상은 8.8m이나 된다.
필자가 찾아간 날은 전국 108 산사 찾아다니는 불자들로 인해 인산인해. 그저 인파 피하기 위해 노주, 석련대, 오층석탑, 진응탑비, 당간지주, 석종, 육각다층석탑, 석등 등 지정문화재 10여점과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나한전, 일주문, 금강문, 보제루 등의 건물을 주마간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곱디 고운 찻집지기가 있는 산중 다원(063-548-4449)이라는 절집 찻집에서 향긋한 한약 냄새가 소올솔 풍기는 쌍화탕 한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두 번째는 벚꽃축제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아예 발길을 돌려 인근하고 있는 귀신사(063-548-0917, 금산면 청도리)만 찾았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경내가 변해 있다. 요사채가 허물어진 것이다. 절집을 지키는 비구니 주지의 안내를 받는다.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 금산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한때는 가까운 곳에 있는 금산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대적광전 (보물826호)과 고려시대의 석탑인 3층 석탑(지방문화재 62호), 귀신사 석수(지방 문화재64호), 귀신사 부도(지방유형문화재 63호)등 문화재 외에도 명부전 및 연화대석, 장대석 등 많은 석불이 있다.
무엇보다 이 절집이 좋은 것은 수령 오래된 나무다. 사진에 담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는데, 그 느티나무가 마음까지 든든하면서 편안하게 해준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절집 뒤켠 돌계단을 따라 올랐다. 석탑과 함께 석수를 만나게 되는데, 사자 닮은 부도 위에 남근석이 얹혀 있는 것이 매우 특이한 점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절이 있는 곳의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구순혈(狗脣穴)’이라고 한다. 즉, 개의 음부를 닮은 지형이라는 뜻으로 음기가 센 자리인 것. 그래서 그 음기를 막기 위해 남근을 세웠다는 것인데, 참으로 희한한 절이다. 그것을 변명하는 글귀로 땅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남자 성기 모양의 조각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맑아 보이는 비구니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한마디 묻는다. ‘스님, 왜 저는 이렇게 번뇌가 많을까요? 스님은 번뇌가 없나요’ 사실 대답을 들으려는 것은 아니다. 속가나 불가나 번뇌가 없겠는가. 스님이 말해준 답변은 기억되지 않는다. 속 시원하게 해결책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그저 번뇌 많은 채로 살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는 내내 펼쳐지는 보리 밭과 넓은 평야를 바라본다. 유채꽃 만발한 만석보지에 점을 찍고 벽골제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찾는다.
뙤약볕이 부담스러운 곳이지만 공원에 만들어진 거대한 용 조형물은 눈길을 잡아끈다. 대나무로 만든 듯한 용은 살아있는 듯 잘도 만들었다. 청룡, 백룡을 구분할 수 있고, 끔틀거림이 느껴질 정도다.
근처의 조정래 문학관을 보고 바다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망해사도 찾는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망해사 앞으로 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대웅전은 보수공사가 한창인데, 불당에 들어서 이 절을 창건했다는 도선국사의 초상화를 만난다. 술을 많이 좋아했다는 도선국사다. 생각보다 훤칠하게 잘 생긴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게 절집을 비껴 나와 심포항과 거전마을을 찾는다. 이제는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바닷길이 멀어져 옛 운치는 떨어졌지만 과거 낙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가슴속까지 뭉클하게 했던 핏빛 낙조는 필자의 기억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금산사 미륵전.

여행정보
● 찾아가는 방법:호남고속도로-금산사 나들목-712번 지방도로-원평을 거쳐 들어오면 된다. 또는 전주-김제간 4차선 길이 생겨 가깝다. 그 외에는 서쪽방면으로 가면서 찾아보면 된다.
● 추천 별미집:금산사 입구에 일범식당(063-548-4023)을 비롯해 토속음식점들이 즐비하지만 맛의 고장 전주를 경유하는 것이 좋다. 또 심포항 근처에서는 거전 마을 들어가는 곳에 있는 새만금횟집(063-543-6668)은 이 지역 별미인 백합회무침과 백합국수를 먹을 수 있다.

■이 신 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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