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산아제한에 열을 올리던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저출산국이 된 오늘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준비와 대책이 항상 엉성하고 몇 발자국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아기를 서너 명만 둬도 야만인 취급을 받던 시절을 살아 본 필자로서는 감회가 정말 새롭다.
우리는 무엇이든 1위 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1인당 출산율이 2006년과 2007년 두 해에 걸쳐 193개국 중에서 연속 최하위, 저출산율은 1등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예컨대 일본은 2006년 1.32명, 2007년 1.34명에 이어 2008년에는 1.37명으로 상승추세를 보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07년 1.26명에서 2008년에는 1.19명으로 더 떨어졌다.
이같이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저출산 위기를 맞아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출산장려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6월 9일에는 종교계·시민사회계 등 총 40개 기관·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편안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범국민운동이 지금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일과 가정 양립위한 환경조성

이 자리에는 이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한 사회 각계인사 등 1천여 명이 참석, 행동주체별로 행동선언을 발표했다. 종교계는 생명존중사상 확산을 위한, 경제계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시민사회계는 결혼과 출산의 장애극복을 위한, 정부는 자녀 출산 및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를 위한 행동선언을 한 것이다.
각계의 행동 선언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저출산대책이 거의 망라돼 있다. 이대로만 실천되면 우리나라는 곧 출산율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경제계의 행동선언은 주 40시간 근로시간제의 정착,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의 장려, 시차별 출퇴근제·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재택근무제의 도입, 직장보육시설의 확충, 정시퇴근을 장려하는 패밀리데이의 운영, 다자녀 근로자의 우선 배려 등을 담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에 비춰 하나같이 중요한 내용들이며,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해야 할 기업측면의 주요과제들이다.

가족친화적 기업문화 형성돼야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될 단계에 와 있다. 정면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다. 쉬운 일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무엇보다도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출산이나 육아를 직장인이 알아서 하고,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소속원의 임신·출산·육아·교육 등이 바로 회사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될 때, 직장 분위가가 쇄신되고 노동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닐까?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일에만 중독되는 직장인이나 회사는 장기적 발전이 없는 법이다.
근로자들을 정시에 퇴근토록해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도 저출산문제 해결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직장 내의 인간관계 때문에 일과 후에도 직장에 머물거나, 부득이 2차, 3차까지 따라 나서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출산·육아기에 있는 남녀 직원들을 대상으로 탄력시간 근무제, 재택근무제, 출산여성의 복직 보장, 퇴근시간 게시제 등 다양한 제도를 회사 실정에 맞게 운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긴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CEO들이 자기 기업을 가족친화적·가정친밀형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작은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업문화 형성에는 경제 5단체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기업도 발전하고 나라도 융성해진다.

최 용 호
(사)산학연구원 이사장,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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