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의 일정은 죽도와 해안 여행이다. 오전 10시, 죽도 유람선(1만5,000원)에 오른다.
울릉도 오면 으레 독도를 찾게 되지만 이번에는 죽도를 가는 것이다. 울릉도 여행길에 늘 눈앞으로 다가서는 섬. 울릉도 부속섬 44개(유인도 4, 무인도 40) 중 가장 큰 섬. 도동항에서 15분 정도(도동항에서 7㎞)면 도착된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 떼가 잘도 쫓아온다. 죽도에는 부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현지민 말에 따르니 아버지는 올 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몇 년 전 나물을 뜯다 바다에 낙상해 하직했다고 한다. 그러니 30대 후반 정도 된 아들만 덩그러니 살고 있는 유인도다. 오로지 더덕농사만 짓는단다.
배가 섬으로 다가선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중간 즈음 온통 섬 조릿대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竹島)’라는데 대섬, 대나무섬, 댓섬이라고도 한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평평하게 수평을 이루면서 직육면체 모양을 나타내며, 절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기암괴석이 펼쳐진다. 제법 멋지다. 물건 실어 올리는 도르래가 선 두 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착장에서 철계단을 따라 오른다. 평평한 길이 나서면서 입장료(1,200원)를 받는다. 제법 잘 지어놓은 현대식 건물. 야외자리와 함께 더덕을 판매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더덕즙을 판다. 텔레비전에 나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자그마한 키에 건강해 보이는 청년. 말을 시켜 보지만 묵묵무답이다. 그저 향 진한 더덕즙으로 입맛을 다실 뿐. 섬 산책을 나선다. 무리를 지어 피어난 섬바디의 하얀 꽃이 깍아지른 벼랑 끝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자꾸만 눈이 부시다.
4km 정도 섬 산책길은 하냥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인공이 아닌 자연 섬에서의 잠시의 멈춤. 오랫동안 이 섬에 살라고 하면 숨통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를 암흙 같은 곳. 우리는 잠시 섬에 머무르고 말기에 그리움이 가슴 한 켠으로 쑤시고 들어 앉는 것이다.
오후 일정은 해안길 따라 가기다. 섬 한 바퀴를 휘돌아보는 여행. 울릉도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정이다. 총 44.2km. 아직 섬목에서 도동항까지 해안길(4.4km)이 연결되지 않은, 미완성 길. 통구미의 거북바위 앞에 잠시 차가 멈추고 남양 남서리 고분군(경상북도 기념물 제 72호)을 찾아간다. 무덤은 산록 경사면에 괴석으로 위가 편평하게 축대 또는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시체를 안치하는 돌덧널을 만들고 그 위에 돌로써 봉분을 만든 이른바 석총이다.
삼국시대 울릉도 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곳에 다시 오고 싶었다. 가파른 구릉진 밭 위에 얼키 설키 흩어져 있던 별로 볼 것 없는 그 고분군을 말이다. 자연 용출수가 흘러내리고 나물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그곳.
봄 지나 야들야들한 나물은 없다. 그저 부지깽이 나물만 뻣뻣해지고 있을 뿐이다. 감자꽃, 양귀비 꽃 사이를 가르며 허물어질 듯한 고분 앞에 선다. 첫 번째 감흥은 없지만 여전히 생그럽다. ‘그동안 잘 있었던 게지’. 인사를 건네 본다. 순간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차창 빗물 사이로 일몰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 눈이 멈춘다. 서쪽 해안길을 한눈에, 그리고 사자암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로 시름을 달래던 그 전망대는 또 언제쯤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해안길을 따라 가다 학포로 내려간다. 길은 너무나 구불거려서 봉고차가 몇 번이나 숨 가르기를 해야 한다. 일반 여행객들이 거의 찾지 않아 늘 한적한 학포 마을이다. 민가가 있지만 한번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여전히 텅빈 바닷가와 텅빈 집들의 형상이다. 검은 자갈이 깔린 그곳에 파도소리가 음악 선율처럼 타고 흐른다. 바다 끝 언덕위에 주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 한 채. 돌 담벽에 아름다운 다육식물이 꽃을 한껏 피어내고 있다. 민박을 하는지, 손글씨로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만 인기척은 없다.
이곳은 우산국 우해왕의 슬픈 왕비 풍미녀가 죽자 그가 아껴 기르던 학이 슬피 울며 날아와 앉은 곳이라 하여 ‘학포’라 했다기도 하고 이 마을 뒷산에 학이 앉아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어 ‘학포’라 부르기도 한단다. 학의 날개 안에 안겨 있는 작은 마을. 이 마을은 울릉도 개척사 이규원이 첫 발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고종 19년(1882) 4월30일 아침.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은 심선완, 유연우 등 8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배를 대고 섬에 첫발을 디뎠다. 왜 이 곳에 첫발을 딛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쪽을 둥글고 오막하게 감싸 천연의 항만을 형성하고 있는 지형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이규원의 흔적이 새겨진 글씐 바위는 보일듯 말듯 풍상에 거의 지워져 있다. 학포가 좋은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그저 학포와 만물상은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을 뿐이다. (계속)

■이 신 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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