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내리쬐는 날 목적없는 여행길에 나선다.
아니 목적이 없진 않다. 단양 옥순봉과 구담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다는 군 관계자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기에 단양쪽으로 차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단양 8경의 한 곳인 도담삼봉 앞에서 잠시 차를 멈추었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보기도 한다. 삼봉의 뻔한 전설이지만 처봉과 첩봉을 가늠해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미움은 항상 공존하는 듯하다.

그저 눈도장만 찍고 다시 단양에서 제천쪽으로 난 국도변을 따라 간다. 장회나루를 앞두고 눈 앞이 시원해진다. 푸르디 푸른 산세와 맑은 강물의 조화. 견딜 수 없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지만 시원한 조망 덕분인지 마음 한구석은 시원해진다. 유람선을 타진 않는다.
예전 구담봉과 옥순봉을 보기 위한 방편으로 탄 이후 한번도 시도를 하지 않았다. 유람선에서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관광안내가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란재라는 팻말을 보고 차를 멈춘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걸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곳이 구담봉과 옥순봉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군’. 계란재는 단양땅인가? 제천땅인가? 이곳은 제천 관할이다. 강에서 보면 옥순봉은 단양8경의 하나지만 계란재는 제천시 관할인게다. 군의 경계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제천 10경중 한곳이란다. 제천 10경이 있었던가?
길은 아주 간단하다. 계란재를 지나면 사람들이 살았음직한 공원지킴터(367m)가 나온다. 밭을 일구고 산 듯 평평하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구담봉과 옥순봉으로 길이 나뉘게 된다. 옥순봉 길은 깍아지른 암릉이 있어 다소 힘겹지만 구담봉을 바라보는 코스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선 구담봉을 보고 옥순봉을 경유하는 코스로 산행을 즐기면 된다. 아니 그건 각자의 상황에 맞추면 될 일이다. 정해진 산행 코스는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필자는 구담봉(335m)으로 발길을 옮긴다. 더위를 가려주는 숲은 없지만 기암 위에서 바라보는 발밑 풍경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깍아지른 바위벽과 작은 소나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정상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단양군 장회리의 유람선 선착장이 보이고 눈앞으로는 금수산이 조망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옥순대교와 청풍호를 따라 겹겹이 산자락이 이어진다. 해질녘 낙조 때면 더 아름다울 형상이다. 그곳으로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들어오고 있다.
청풍호 유람선에서 보면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그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이지만 당연히 거북이 형상은 느낄 수 없다. 물 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하여 구담이라기도 한다.
조선인종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이지번이 명종때에 지평을 지내다가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지번은 황우를 타고 강산을 청유할 때 칡넝쿨로 큰 줄을 만들어 구담의 양안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신선이라 불렀다 한다.
이지번은 퇴계 이황 선생과 후학이기도 한데, 그가 이곳에 머문 이유 중에는 기생 두향이가 있었다. 그 청렴결백의 대명사로 느껴지던 퇴계 선생에게도 애절한 기생과 얽혀진 사랑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구구절절이 이야기 할 수는 없고 단지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하던 시절, 알게 된 기생이 두향이었다. 퇴계 선생은 48세, 두향은 18세.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고 당시 선생은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게 되면서 빈 가슴에 설중매 같았던 두향이를 가슴에 담아 둔 것이다.
두향은 시서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는데, 도산서원에 가면 수령 오래된 매화나무에 놀라게 됐던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로 가게 되면서 9개월만에 사랑은 끝이 났고 두향이와 퇴계 선생은 서로를 평생 가슴속에 담고 살게 되는 것이다.
두향의 마음이야 오매불망 퇴계를 잊을 수 없었으며,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으나, 퇴계의 처지를 생각하면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간접적으로 인편을 보내 문안을 여쭙곤 했다. 헤어진지 어언 4년이 되는 봄날에 문안 여쭈러 보낸 인편에 퇴계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두향에게 보내주었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黃卷中間對聖賢)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虛明一室坐超然)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梅窓又見春消息)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분명히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두향은 이 시 한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다고 한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두향이가 선물 준,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청매화 화분. 매화꽃을 두향이인 것 마냥 사랑했던 퇴계선생의 마음은 세상을 하직할 때 ‘이 “매형(梅兄)에게 물을 잘 주거라’라는 말은 유명하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의 임종 소식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던 당시의 시대상이 안타깝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퇴계와 함께 노닐던 강가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 하였다. 장회나루 강너머에 두향이의 묘가 있는 것. 구구절절이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고결한 사랑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사랑은, 특히 너무나 유명한 선인의 숨겨진 사랑은 더욱 관심을 끌게 하는 듯하다.
해마다 단양에서는 매년 5월 5일 ‘두향제’를 지내고 있다. 기회가 되면 두향제에 참여하고 싶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방법:중앙고속도로 이용해 북단양 나들목으로 나가 도담삼봉 보고 수산쪽으로 난 82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남제천에서 청풍호를 잇는 길을 이용해 하천리에서 옥순대교를 건너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추천 별미집:단양읍내에 있는 장다리 식당(043-423-3960)은 마늘 돌솥밥으로 소문난 맛집. 괜찮다. 돌집식당(043-422-2842, 곤드레돌솥밥), 대교횟집(043-422-6500 다슬기국, 쏘가리회), 박쏘가리횟집(043-421-8825 쏘가리매운탕), 전원회관(043-423-3131 한우), 포장마차(043-422-8065, 쏘가리매운탕)가 있다.

■이 신 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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