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촌놈’ 양용은 선수가 PGA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우승기록을 세웠고 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3타 차로 따돌린 역전승이었다.
프로에 입문한 1996년 국내 신인왕이 된 뒤에도 찬밥을 물에 말아 먹을 정도로 형편은 어려웠다. 1999년 상금 랭킹 9위에 올랐지만 벌어들인 돈은 1800만원 남짓이었다. 그는 “구두닦이 전국 9위도 그것보다는 더 벌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 진출도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끈질긴 노력과 도전정신으로 이뤄낸 우승이기에 그 어떤 우승보다 값지고 감동적이었다. 그는 한동안 잊혀졌던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었고 희망과 용기, 도전의 값어치를 짜릿하게 만끽하게 했다.
피겨스케이팅, 수영, 골프, 배드민턴,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각 종목에서 세계적 스타들이 출현하고 세계 최고봉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스포츠는 물론 기업도 인생살이도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해서 이루어내지 않고 승리하는 길은 없다.
스포츠도 기업도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위기상황에서 안전을 택할 것인가, 모험을 걸어 승기를 잡을 것인가는 어려운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가를 사후에는 알 수 있지만 사전에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양용은 선수의 과감성은 마지막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우즈에 1타 차로 쫓기던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티샷은 페어웨이 왼쪽으로 살짝 벗어났다. 남은 거리도 만만치 않았고 바람이 불었고 큰 나무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그린을 직접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직접 그린을 노렸다. 공은 나무를 넘어 홀 옆에 멈춰 서자, 양용은의 두 주먹은 하늘로 솟았다. 게임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샷을 믿었던 것이다. 자신을 믿었다는 것은 그 믿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런 기회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하고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붙잡아야한다. 기회를 붙잡는 결단력과 집중력은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유의 기술과 집중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다. 독일이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된 것은 대기업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의 역할이 컸다는 게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을 쓴 헤르만 지몬의 분석이다.

기술과 사람에 투자해야

지난 6월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은 “기술 주도형 글로벌 선도기업인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히든챔피언’ 집중 육성방안에 대한 지지와 다름없다.
얼만 전 중소기업청이 한국경제신문과 공동 발굴한 22개 한국형 히든 챔피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연구개발(R&D)에 대한 집중이다. 그들 기업은 자신 있는 분야에 돈과 사람을 집중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매달렸다. 잘 나갈수록 신기술 개발을 위한 R&D 투자를 늘렸다. 남들이 가지 않은 분야를 선택해 한 우물을 팠다. 자기 분야에서 1위가 되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
앞서 가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앞서가는 선수들은 남모르게 엄청나게 땀을 흘린다. 양용은 선수는 스스로 역경을 돌파, 도전해서 큰일을 해냈다. 그는 진정한 히든 챔피언이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기업경영도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끝이 없는 경주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자는 말은 무성하지만 기업경영은 장애물 경주나 다름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정부지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업은 사람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기술과 사람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살아남는다. 세계를 놀라게 할 스타선수들과 스타기업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야한다. 양용은 선수의 도전과 쾌거를 보며 한국 기업의 희망을 찾는다.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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