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시행될 예정인 복수노조의 허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서유럽의 선진국들이 버린 제도를 한국이 왜 덥석 잡느냐는 비판론에서부터, 13년간 미룬 숙제를 이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불가피론이 맞서 있다. 양쪽 모두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먼저 허용을 반대하는 쪽의 논거를 살펴보자.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는 팽팽하게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재계와 양 노총도 복수 노조 허용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그 까닭은 제3, 제4의 노총이 결성되면 노노갈등(勞勞葛藤)으로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해야 하고, 산업현장에 혼란이 가중돼 생산성이 낮아지는 등, 국제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노조의 모국인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급속히 퇴조되고 있는 복수노조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공격한다. 복수노조가 감소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따른 노조 선호도 저하 ▲복수노조 기업의 생산성과 임금수준이 단수(單數)노조 기업보다 낮은 점 ▲복수노조 사업장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투자기피 ▲지식경제시대에로의 이행에 따른 노조 자체에 대한 수요 감소 등을 들고 있다.

복수노조 서구에선 ‘시들’

한국경제의 현실에 비추어 복수노조제를 도입하고, 이를 적극 권장할 단계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헌법상의 권리규정이나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모든 근로자는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자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견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점 때문에 오랫동안 단수노조주의를 고수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OECD가입과 함께 19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제정하면서 복수노조 허용조항을 명문화하였다. 하지만 이 법의 부칙에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에는 2010년 1월 1일 이전까지 그 노동조합과 조합대상을 같이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고 규정했었다.
결국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13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OECD로부터 모니터링을 받기도 했으며, 선진국들과의 FTA체결과정에서는 사회적 덤핑이라는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더 이상 시행을 유예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행따른 비용 최소화를

복수노조의 허용은 기본권적인 요소이므로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허용방침도 복수노조의 설립을 적극 권장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행을 무작정 미루기보다 시행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고,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법이라 생각된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과도기적인 혼란이 충분히 예상된다.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것이고, 노·노간, 노·경간, 노·사·정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정착과정에서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섭창구의 단일화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상세히 거론할 겨를은 없다. 다만 가입한 노조가 다르다고 해서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별이 발생해서는 안 되고, 분쟁은 최대한 줄여야하기 때문에 美·獨·日·伊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내용을 참고로 하면서 한국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복수노조가 서유럽에서는 이미 퇴조기에 들어서 있다는 점은 타산지석이 될 줄 안다.
이 기회에 사용자에 의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불 관행은 단호하게 중단시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관행으로 그간 참다운 노조운동과 노조활동이 크게 왜곡되었고,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비정규직문제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노조의 낮은 조직률과 최강의 전투력이 빚어낸 후진적 노동운동도 이제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

최용호
산학연구원 이사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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