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하면 공룡이 우선 떠오른다. 당항포의 공룡 엑스포장, 상족암이 가장 내로라 하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멀고도 먼 땅, 그곳에 간다. 남녘이라서 때 이르게 피어난 진달래를 보게 됨이 신기한 고장. 고성에서 돌담이 아름다운 학동마을을 만난다.
몇해사이 시골 마을 돌담들이 인기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사라져가는 옛 것에 대한 아련하면서도 정겨운 추억이 그리운 게다. 담장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대우를 받는다. 고성군 학동마을(하일면 학림리)의 돌담도 문화재 제 258호(2006년 6월 19일)다.
겨울 햇살이 따사로운 날, 마을을 찾는다. 학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붙여진 학동마을. 전주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이다.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의민공 최균의 고손자인 최형태가 당시 황무지였던 이 마을에 가솔들을 거느리고 이주한다.
1900년대에는 150여 세대였으나 지금은 50여 세대로 줄고 100여명이 거주한다. 간간히 멋진 돌담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질반질 윤기 나는 얇은 돌이 켜켜히 잘도 쌓여 있다. 마치 상족암 바윗돌 같은, 바닷가 돌이 아닌가 싶은데, 실제는 이 마을 뒷산, 수태산 돌로 변성암 계통의 점판암이다. 대부분 300~400년이 지난 돌담들이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학림천을 건너 마을 끝자락의 서비정(西扉亭)으로 간다. 당대에 저명한 유학자였던 서비 최우순(1832~1911년)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다.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청사(晴沙)였던 호를 서비(서쪽사립문)라 고친다. 회유책으로 준 은사금을 거부하기 위해 향년 80세의 나이에 자결을 선택한 충신.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그를 기리며 사당을 세웠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 을씨년스러운 집. 마당에 우수수 떨어진 모과가 처량스럽지만 입구의 늘 푸른 소나무의 자태가 긴 세월 고고하다.
골목에서 참봉댁으로 불리던 최영덕 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178호)를 만난다. 고종 6년(1869) 최태순이 건립했다. 지금은 5대 손의 소유로 되어 있는데 총 5동의 건물이다. 안채육영재(경남 문화재자료 제208호)는 의미가 깊다. 경종 3년(1723)에 후손들의 영재육성을 위해 육영재를 초가집으로 짓는다. 학생 수가 늘자 헌종 11년(1845)에 현재의 건물을 세운 것. 서당이면서 개인 집으로 이용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하일국민학교가 불탔을 때는 전교생이 4년간이나 공부했다. 안방 입구에 ‘학림헌(鶴林軒) 현판이 걸린 것이 특이하다. 이곳의 또 볼거리로는 잡물이 들어가지 않게 무거운 뚜껑을 덮고 두레박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홈을 파 놓은 우물이다.
참봉댁과 담을 맞대고 있는 종손댁은 이 마을의 백미. 300년 세월이 흘러 안채에 슬라브 지붕을 얹었지만 구석구석 세월의 연륜이 스며 있다. 사랑채의 축담을 오르는 기단 석축, 아주 세밀하게 쌓은 담장,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잿빛 머금은 검은 돌, 점판암은 집을 멋스럽고 고급스럽게 꾸미는데 잘 어울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안채 뜰 앞의 넓은 돌덮개로 만든 닭장.
예전에 산에서 짐승들이 많이 내려와 안채 축담 앞에다 닭장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살아생전 본 적이 없다. 안채 뒤쪽 가장 높은 곳의 사당도 특이하다. 집안에 사당 있다는 점 말고도 눈이 부신 것은 층층이 쌓은 돌 담장이다. 칠순 넘은 종부가 길손에게 타주는 녹차향이 겨울 햇살 만큼이나 따사롭다.

●찾아가는 길:고성읍~진주 국도 33호선~상리, 부포사거리 좌회전~13번 국도(중촌삼거리 우회전)~77번 국도(삼천포방면)~정곡삼거리~학동마을
●별미집과 숙박:거보가든(055-674-7870, 곰치국)이 밑반찬이 좋고 깔끔하다. 개천된장(055-672-5459, 개천면 좌연리)에 가면 전통적인 장류를 구입할 수 있으며 예약하면 식사도 가능하다. 드라마인(055-673-8580 회화면 당항리)은 허브 농원이 있는 현대적 전원카페다. 숙박은 당항포 주변에 많다
●문의:고성군 문화관광과(055-670-2223)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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