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동아대 의대 김덕규 교수가 쓴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하라>는 글이 온 국민의 가슴을 찢었다.
나라를 지키다가 스러진 해군장병들, 살신성인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한주호 준위의 희생, 천안함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침몰한 금양호 선원들의 실종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다. 천안함 함미(艦尾)가 인양돼 실종자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무너졌다. 귀환하지 않은 수병은 지금도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움을 더한다.
누구의 소행인가.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최종판단을 할 단계는 아니지만 뻔한 것 아닌가. 군함이 침몰했다면 우선 적의 공격을 의심하고 단결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온갖 억측과 음모설이 난무했다. 그런 걸 생산하고 퍼뜨리는 세력들이 판을 쳤다. 모두 해군이나 바다, 잠수함, 잠수정, 어뢰, 기뢰에 대해 전문지식이 있는 듯이 떠들었다. 사건이 터진 후 당국의 발표가 혼선을 불러일으킨 탓이 크다.

국가안보 위기상황

국가적 참변을 맞고서도 국가 전체의 안위와 이익은 고려않고 정치권은 정파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일부 언론보도는 냉정을 잃었다. 일부 야당 정치인들은 “북한 공격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생존 장병들의 합동 기자회견에 대해 “짜 맞추기 식”이라며 군인들의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참변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공개해서는 안 되는 군사기밀이 너무 많이 노출됐다. 군사기밀 노출은 이적행위다. 위기관리태세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증거다. 침몰원인 규명 못지않게 안보상 허점을 찾아내고 안보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야한다. 어떤 경우든 안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진사태를 맞은 아이티는 온갖 약탈이 판치는 모습을 보였다. 9·11 테러 당시 미국은 사전 첩보를 입수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지만 대참사 앞에서 단결했다.
희생자의 42%에 달하는 1164명의 유해는 찾지 못했지만 미국 국민은 희생자 추도식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고 꽃을 바치는 것으로 아픔을 달랬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피격된 미국 아리조나 함은 1177명의 장병들과 함께 침몰, 지금까지 역사적인 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위기일수록 단결해야

한국은 선진국 대열진입의 직전단계에 있다는 외국의 평가가 종종 전해진다. 거기에 우쭐댈 일 아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땄다고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다. 국가안보적 위기를 맞고서도 정파적 입장이 갈리고 온갖 낭설이 판치는 걸 보라.
지붕이 불타고 있는데도 처마 밑에서 재잘거리는 제비와 참새처럼 경각심을 갖지 않고 장차 닥쳐올 재앙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고사성어가 연작처당(燕雀處堂)이다. 1880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일본을 방문한 조선왕조 수신사 김홍집에게 전해 준 ‘조선책략’에서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모두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 한다”며 쓴 표현이 연작처당이다.
세계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며 전쟁보다 더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 재산 몰수위협, 이산가족면회소 동결에 이어 개성공단 폐쇄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북한의 움직임이다. 경제와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국가적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국가의 수준을 말해준다. 위기를 맞고서도 위기라는 걸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나라를 지킬 것인가. 왜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6·25 남침을 당했는가를 되돌아보자. 지금은 위기다. 지도력은 위기 때 빛나는 법이다. 선진 국민은 위기 때 단결한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