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1968년 겨울의 어느 날, 18세의 소년 필리프 프티 (Philippe Petit, 1949~)는 파리의 한 치과병원에서 짤막한 신문기사를 읽고 있었다. 뉴욕에서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짓고 있는데 그것은 에펠탑보다 100미터 더 높은 411미터나 된다는 기사였다.
무심코 그 기사를 읽던 소년은 ‘쌍둥이빌딩 공사가 끝나면 이 건물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어떤 영감을 얻었다. 치료도 받지 않고 그 페이지를 찢어서 주머니에 넣고 달려 나왔다. 그는 한동안 치통으로 고생했지만 이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을 타겠다는 꿈을 세우고 꿈을 얻은 기쁨으로 고통조차 잊었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사이를 걷기 위해 6년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나갔다. 1973년에 드디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완공되자 프티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사이에 그는 1971년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두 첨탑 사이를 횡단하고, 1973년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철탑을 건너며 예행연습을 하며 줄타기 기술을 축적해왔다. 그리고 그는 공사 중인 쌍둥이 빌딩에 건설 노동자의 옷을 구해 입고 잠입해 현장조사를 하고 항공촬영까지 했다. 그렇게 현장에 대한 감각을 익힌 프티는 쌍둥이 빌딩 사이에 걸 두께 2cm, 무게 200kg의 강철 와이어를 주문 제작했다.
1974년 8월 6일 저녁, 드디어 작전은 시작됐다. 프티를 비롯한 그의 일당들은 쌍둥이 빌딩에 잠입을 시도했다. 그들은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 화물 엘리베이터 안에 장비를 싣고 옥상까지 올려가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밤새 쌍둥이 빌딩 사이에 강철 와이어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45분, 프티는 공연을 위해 준비한 옷을 갈아입고, 길이 7.9m의 균형 장대를 들고, 두 빌딩 사이 43m 허공 위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발밑에는 오직 두께 2㎝의 가는 줄 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다. 높다란 허공에서 단 하나의 장대만 들고 외줄을 타는 것은 정말 죽음과 마주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는 45분간 줄 위에서 앞뒤로 걸어 다니고, 춤을 추고, 무릎을 꿇고, 저글링을 하고, 심지어 줄 위에 눕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가 줄에 누워있는 동안 갈매기가 머리 위를 날고 있었고,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는 지상에 붙박인 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아닌 신들과 새들이 사는 영역에 자신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쌍둥이빌딩 사이를 45분간 8번이나 오갔다.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출근길의 수많은 뉴욕 시민들은 발길을 멈춘 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411m 공중에 떠서 벌인 프티의 묘기를 작가 폴 오스터는 ‘고공 줄타기의 예술가’라고 명명했다. 고공 줄타기 공연을 마친 프티는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건물 아래로 끌려나왔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이유가 뭐냐는 질문세례를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신비하고 심오한 작업의 미덕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프티의 이 ‘기습 공연’은 닉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을 제치고 그날 신문 1면을 차지했다. 그는 9·11사건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그의 자서전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에서 추모하면서 “쌍둥이 빌딩이 다시 나란히 구름을 간질이는 그날 그는 다시 줄타기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의 비범한 행위는 책, 연극, 다큐멘터리 영화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영화 ‘맨 온 와이어’는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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