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현대 감각을 더한 일급 스릴러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전임자의 뒤를 이어, 전 영국 수상 아담 랭 (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 집필을 맡게 된 유령작가 (이완 맥그리거). 아담 랭은 재임 시절 실책이 폭로되자 뉴욕 인근 섬에 살며 미국의 도움을 청하고 있었고, 한적한 섬마을은 아담 랭을 비난하는 데모대와 언론 취재로 시끄럽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일을 시작한 유령작가는 전임자가 숨겨둔 아담 랭의 젊은 시절 사진과 전화 번호 등을 발견한다. 전임자가 확인한 것은 무엇이며, 전임자의 죽음은 공식 발표대로 자살이었을까?
한편 남편과 비서 아멜리아 (킴 카트렐)의 관계에 괴로워하던 아담 랭의 부인 루스 (올리비아 윌리암스)는 유령작가의 침대로 찾아들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유령작가는 루스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찾아낸 단서들을 알려주는데.
<유령 작가>(2010)는 엄청난 보수를 받고 전직 수상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유령 작가가, 진실을 밝히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고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이 연일 떠들어대고 데모 군중이 외쳐대는 아담 랭의 과오나 영국과 미국의 정치적 밀약 등은 외연을 풍부하게 하기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 랭을 싸고도는 변호사와 자서전 출간 관계자들의 엄숙한 표정도, 비서의 쌀쌀한 응대도 물론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기위한 맥거핀 (영화 등의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 효과일 뿐이다.
<유령 작가>는 알프리드 히치콕으로 대표되는 고전 스릴러 문법을 충실하게 이으면서 모던한 감각까지 더해 칭찬 받고 있다. 무엇보다 아담 랭의 저택이 있는 작은 섬마을 풍광이 음모와 추리에 안성맞춤이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키 큰 잡초가 듬성한 모래 언덕을 소리 내며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은 시멘트와 유리로 지어진 2층의 직사각형 저택을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과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외딴 섬의 정신 병원을 무대로 한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2010)와 더불어, 가장 효과적인 촬영 장소와 날씨를 활용한 최근 스릴러다.
<유령 작가>와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금발 미녀의 비명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이대며 “이래도 놀라지 않을래?”라고 윽박지르는 싸구려 공포 영화는 정장 차림 스릴러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유령 작가>와 <셔터 아일랜드> 시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젊은 기자들이 많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들은 고전 심리 스릴러를 보지 못한 채, 사이코 범죄자의 발작만 있는 프레디 크루거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살인마) 식 액션 공포만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에 기초한 <유령 작가>는 그 어떤 공포 스릴러 영화 주인공보다 기구한 삶을 살아온 폴란드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29번째 연출작이다.

■옥선희┃영화칼럼니스트blog.naver.com/easto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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