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주물유기에 ‘가업의 혼’ 담아

85년 전통의 거창유기공방은 전통주물방식의 유기를 생산하는 업체. 현 이기홍 대표가 3대째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기홍 대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디자인 혁신으로 유기의 새로운 가치를 조명하고 있으며, 2003년 전국공예대전에서는 단반상기와 사각찬기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법전수를 통한 후계자 양성을 위해 기숙사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전통 유기의 부활을 이끌며, 유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에 위치한 85년 전통의 거창유기공방을 처음으로 연 사람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김석이 옹(1954년 별세). 집안이 어려워 고향을 떠나 떠돌면서 배운 유기 기술을 밑천삼아 거창에 소규모 공방을 차린 것이 1924년이었다. 김석이 옹은 전통 주물유기 제작방식으로 제기나 화로, 수저 등을 만들어 팔았다.
김석이 옹의 자식들 중 아무도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던 차에 현 거창유기공방의 대표인 이기홍 사장의 아버지 이현호 옹(1995년 별세)이 1935년 문하생으로 들어가 14세의 어린 나이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이듬해부터 이현호 옹은 거창 시내에 거창유기라는 상호의 판매장을 내고, 직접 만든 유기를 내다팔았다. 비교적 좋은 재료를 구해서 쓰고, 솜씨도 좋아서 아버지 이현호 옹의 유기는 인근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놋쇠 밥그릇 한 벌이 쌀 한가마니 값이었으니 벌이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러한 호시절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60년대 중반이후 유기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어려워 진 것. 할 수 없이 이현호 옹은 1972년 유기제작을 중단하고, 대신 사람들이 버리는 놋그릇을 가져다 고물상에 내다파는 중간유통과 스테인리스 그릇 판매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그릇가게에서 일을 돕던 이기홍 대표가 다시 공방을 열자고 했을 때 아버지 이현호 옹은 펄쩍 뛰며 반대를 했다.
그러나 이기홍 대표는 그동안 그릇 판매를 하면서 확보한 판로와 기왕에 가지고 있는 유기제작 기술을 결합하면 사업화해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에 기어이 아버지를 설득해 공방을 다시 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놋그릇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징, 꽹과리 등의 단조 유기제작으로 겨우 공방의 명맥을 유지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유기를 찾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 대표는 단조 유기제작을 중단하고 주물 유기제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공방의 고난은 1, 2대에 이어 3대인 이기홍 대표의 대에도 찾아왔다. 1999년에 일어난 화재사고가 그 것. 공장과 창고 2동이 전소한 대형 화재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인명 피해가 없었고, 제품이나 원재료들이 불에 탔어도 녹여서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 창고만 하나 빌려서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거창유기공방은 현재 연 매출 10억원을 올리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성장이 있기까지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한창 웰빙 붐을 타고 놋그릇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던 2002년 부산의 한 냉면집에서 냉면그릇을 대량주문하면서 자기네 상호를 그릇에 새겨달라고 한 것.
그릇에 마킹 하나 하는데 당시 납품하기로 한 가격의 마진보다 더 비쌌다. 그래도 벌써 납품 약속을 해놓은 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시 시가 8천만원 가까이 하던 중고 레이저 마킹 기계를 사들여 주문대로 납품을 했다.
당장은 손해였던 그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기왕 들여놓은 기계로 놋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긴 제품을 개발해 선보였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다. 단조롭던 놋그릇에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을 반영해 고급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더할 수 있었던 것.
거창유기공방이 명품 브랜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바로 2003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단반상기와 사각찬기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상들을 많이 받아왔지만 가장 공신력 있는 대회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최고로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전통 유기기술과 첨단기술이 접목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당당히 대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는 결코 운이 아니라 전통 유기제작에 대한 열정과 85년 동안 이어져온 기술력의 결과였다.
이 대표는 요즘 전통 주물유기의 우수성을 이어갈 후계자 양성을 위해 고민 중이며, 전통의 제작방식을 지켜나가면서도 부분적 기계공정을 도입해 보다 대중적인 제품의 양산도 계획하고 있다.

■회사개요
- 창립연도 : 1924년
- 승계연도 : 1980년
- 직 원 수 : 13명
- 업 종 : 전통유기
- 매 출 액 : 10억원
- 소 재 지 : 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1547-5

■연혁
- 1924년 김석이 옹이 주물유기 공방 개설
- 1935년 이현호 옹 문하생 입문
- 1946년 이현호 옹의 공방 승계로 제작 재개
- 1948년 거창유기 상호로 판매장 개설
- 1980년 이기홍 사업장 승계
- 1995년 경남 공예품개발업체 지정
- 1996년 체신부 체성회 우편판매상품업체 지정
- 1999년 경상남도 QC(경상남도 추천상품) 선정(식기, 수저), 경남 공예품 개발업체 재지정, 조달청 납품업체 지정(문화상품)
- 2003년 경상남도 공예품 개발업체 재지정(경상남도), 제33회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대상(대통령상)
- 2007년 경상남도 공예품 개발업체 재지정(경상남도), 경상남도 추천 상품 지정(생활반상기)
- 2009년 명문장수기업인상 수상

■거창유기공방 장수 DNA
- 85년을 이어온 전통 주물유기의 우수성
- 고난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명맥을 이어온 후계자들
- 전통기술과 첨단기술의 조화
- 명품브랜드 전략으로 상품성 업그레이드
- 전통 주물유기에 대한 자부심과 인식전환을 위한 노력
- 후계자 양성을 위한 투자
■사진은 3대 경영을 하고 있는 이기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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