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社 ‘눈물’=대기업 원가 절감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은 회사 운명을 ‘차입경영’에 걸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마른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회사를 운영해도 남는 것은 은행부채 밖에 없습니다.”
대기업들의 사상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하청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경영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정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납품단가 때문에 은행 빚을 내 시설투자와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계를 24시간 쉴새 없이 돌려도 수지 맞추기가 힘든 하도급 업체 눈물이 대기업 가격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자 중소기업들은 종업원들의 급여인상과 근무환경개선을 꿈도 꾸지 못한다.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져 젊은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A대표이사는 “국산 자동차의 품질수준이 과거에 비해 향상된 것은 부품생산 중소기업들의 피와 땀의 결과”라며 “대기업들이 과실을 독식하는 지금 같은 구조라면 뿌리산업의 몰락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까지 인상된 원자재 가격은 대략 28%. 납품단가에 반영된 것은 채 10%도 안 된다. 그것도 3~4개월에 걸쳐 겨우 설득한 결과다.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업종특성상 가격이 오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것이 A대표의 속사정이다.
그는 “원자재 인상분은 시차를 두고 일정부분 단가인상으로 이어지지만 물가·인건비 상승 등은 지난 10여년 동안 한번도 반영된 적이 없다”며 “적자는 인력구조조정 임금동결 생산성향상으로 메우지만 결국 은행차입금으로 연명하는 구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또 “공장 땅값이 평당 3백만원을 넘지만 오래전에 은행 담보로 잡혀 사업을 접고 싶어도 빚만 남는다”며 “매출을 늘려 은행 빚을 또 얻고 시간을 벌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A대표는 최근 자동차 외에 틈새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기업과의 거래가 지속될수록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시장 개척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는 해당분야 경력자 채용을 서두르고 있다.
수도권에서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B대표이사는 하루 8시간 돌리던 설비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시설을 쉴 새 없이 돌려도 납품단가가 워낙 낮아 수지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의 단가 조정방식이 횡포에 가까워 중소기업로서는 도저히 이익이 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대표는 “영업이익 3%면 굉장히 사업을 잘한 것인데 대기업의 원가절감 방식은 영업이익이 아닌 매출액 대비 정률제로 책정된다”며 “대기업이 자체 산정한 원가기준 또한 중소기업의 현실보다 10% 이상 높게 설정돼 거래 할수록 이익 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B대표에 따르면 원자재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시키려면 협상하자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다. ‘갑’의 눈밖에 나봐야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협상으로 이어져도 시간 끌기로 일관, 실제 반영되기 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떨어질 경우 바로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시간차에서 생기는 이익 또한 대기업의 몫인 셈이다.
B대표는 “대기업 횡포가 너무 심해 자녀들에게 사업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오너들도 이지경인데 직원들의 사기는 오죽하겠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입사 20년차 이사급 연봉이 4,500만원으로 대기업 대비 30%에 불과하다고 귀띔한 B대표는 “뿌리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상생분위기 확산에 정부 대기업 모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납품단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주물업계도 마찬가지다. 가격 변동이 많은 고철을 취급하기 때문에 한번 정해진 납품단가로 거래를 하다보면 계속 손해만 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주물업계는 대기업과의 협상을 통해 그나마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중장비를 취급하고 있는 T금속의 S대표는 “비상대책 위원회를 통해 품목별로 일괄적으로 협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별 업체간 협상을 했다면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분과별로 상승폭의 차이는 있지만 중장비 분과는 협상을 통해 ㎏당 180~200원 정도의 상승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주물업계는 1차 원자재 파동이 있었던 2008년부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대위는 주력안건이 있을 때마다 모여 납품단가와 원자재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에 대해 꾸준히 논의했다. 대기업의 비합리적인 납품단가에 대비할 원가분석 자료도 충분히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납품단가 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에서다. 올 초부터 환율과 전기세 인상, 인건비 인상 등의 악재가 겹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은 지난 5월 납품 단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하반기 경기 호황이라는 점 등이 협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S대표는 “협상을 해서 최근 납품가가 조금이나마 인상이 되었지만 이것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될 수 없다. 대기업에서 행주 짜듯이 중소기업의 원가를 분석해서 최대한 이익을 주지 않으려고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경기가 좋아져서 인건비, 관리비, 부자재 등에 대한 인상분도 일정부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D주공의 R사장도 “우리 업체는 중소기업이 주요 납품 대상이지만 대기업이 낮게 책정한 단가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게 단위로 거래를 하는 주물업계에게는 납품단가연동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고철 가격은 222% 상승했지만 전자부품의 단가는 66%, 자동차부품은 56% 밖에 오르지 않아 업계 종사자의 고통이 심했었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에게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하면 협상하는데 5~6개월 걸리는데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중소기업끼리 경쟁을 붙여 금방 내려버린다. 대기업이 쥐어짜기만 하니 R&D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골판지 업계도 지난해 9월 이후 원재료 가격이 50%나 올랐으나 납품처인 대기업에서 단가를 올려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골판지 상자 공급을 전면 중단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통조림이나 음료캔 등을 만드는 제관업계도 올해 3월 석판가격이 톤당 7만원이나 올라 가격 인상분을 중소기업들이 떠 안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던 협력업체 10곳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며 납품중단에 들어갔다. 요구사항 중 일부가 수용된 협력업체들은 생산을 재개했지만 고용인원수로 최대 규모였던 S사는 결국 폐업되고 말았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관련 최근 정운찬 국무총무총리는 “경기가 어려울 때는 중소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경기가 호전될 경우에는 그 혜택을 공유하지 않아,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상생·협력하는 기업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방안마련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박완신·손혜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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