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일 전망대에 자주 간다. 통일 동산 건너 편 헤이리 마을 내에 고객과 식사하기 좋은 음식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를 처음 찾는 고객 중에 색다른 경험 삼아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현장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외신에서는 남북한의 대치상황에 대해 ‘중무장한 병력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집중된 지역’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사실 어떤 분쟁지역에도 이렇게 많은 군사력이 모여 있는 곳은 없다.
쌍방에 낭비도 이런 큰 낭비가 없다. 오두산 정상에 오르면 강 건너편이 북한인데 전망대에 설치된 쌍안경으로 보면 북한의 산하와 주민들도 볼 수 있다. 수 천 년을 함께 이 땅에 살아온데다 언어와 민족이 하나인데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얄궂은 운명이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통일이 안 된 게 슬픈 게 아니라 분단된 현실이 가슴을 저민다.
통일 동산을 내려와 헤이리의 단골 음식점에 들어서면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 진정된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모 영화감독이 자주 온다는 그 음식점은 숲 속에 있어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군사분계선이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날따라 오스트리아에서 온 고객이 식탁 위에 앉은 모기를 잡았는데 비명에 횡사한 그 곤충의 업(Karma)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나라가 처한 운명의 장난이 떠올랐다. 그 모기는 필자가 그날 음식점에 오지 않았으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제의 강점이 없었거나 6.25 동란 때 중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통일된 국가로 인구나 면적, 경제력이 모든 면에서 영국과 비슷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전쟁을 치른 후에 패망한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참전은 신생국가로서는 사실 무모한 결정이었다. 많은 소수민족을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중국으로서는 유사시 북한을 접수할 수 있다는 엉뚱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즈니스를 위해 상하이에 상주하는 대만인이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통일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이페이를 ‘차이니스 타이페이’로 부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로 출전했던 정대세 선수는 최근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월드컵 기간 지급받은 유니폼 중 두 벌만 사용 가능했는데 그나마 경기가 끝난 직후 등 번호가 떨어져 상대편 선수와 교환하기도 민망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그의 말이 북한의 참담한 경제상황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격차가 엄존하는데도 북한의 정권담당자들은 비대칭 전력과 30~40년대에 개발돼 이제는 옛날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로 위협하며 열세를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 분야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우리로서는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미 국방성의 발표는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구소련과 마찬가지로 군사력으로 누구나 경쟁국을 위협할 수 있지만 세계 그 어떤 나라도 기업의 융성 없이 경제적, 군사적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닫힌 마음은 선물로 푼다는 탈무드 격언도 있지만 더구나 아직 ‘쌀밥에 고깃국’도 실현하지 못한 북한에 적정수준의 경제적 지원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통 큰 지원’은 우리도 쓸 곳이 많은데다 미사일로 되돌아오곤 하니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옥수수 박사가 북한에 농업기술을 지도한다든가 여러 가지 형태의 인도적 지원은 공치사 한 번 못하고 제공한 몇 만 톤의 식량보다도 나을 수 있다.
마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다해 키운 수양딸 코제트가 그의 임종 시에 고통을 덜어주려고 베개를 허리 밑에 받쳐주자 감동을 받은 것처럼 물질만으로는 부족할 수가 있다. 과도한 물자는 노회한 북한 정권 담당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새삼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필자 개인이나 많은 국민이 ‘휴대폰과 자동차’의 꿈을 이뤘지만 남북의 극한대립이 있을 때마다 통일의 꿈이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아 매년 여름만 되면 살 속에 박힌 가시처럼 마음 한 편에 욱신거리는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종식돼 신의주에서 제주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그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김광훈
ASE 코리아 선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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