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상 우월적 지위 기술탈취에 남용”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관행이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지식·기술집약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설계도면과 기술자료 요구는 기본이고 노골적으로 특허공유를 요청한다는 것이 한 중소기업 대표의 주장이다.
해당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단절을 우려해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 잘못 보일 경우 납품단가와 연결시켜 후려치기도 한다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이다. 더구나 일정시간이 지난 뒤에는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경쟁업체에 기술을 넘겨 더 싼값에 납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서 중소기업 중 22%가 이런 식의 기술자료 탈취와 유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소송 무엇이 문제인가=중소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탈취당했을 경우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특허소송 제기.
그러나 중소기업이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 대기업들은 ‘특허무효심판소송’을 역으로 제기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
이에 따라 동일한 사안을 놓고 2건의 소송이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나 특허침해소송은 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순서로 심리가 진행되지만 특허무효심판소송은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대법원의 순서로 소송이 진행된다.
소송이 시작되면 최종 판결이 나올 때 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대략 4~5년.
첨단기술의 수명주기가 매우 짧은 점을 감안하면 소송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해당기술이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소기업들은 개발 기술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힌다.
지난해 6월 특허분쟁 사업제도 개편 세미나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특허분쟁 장기화, 기업은 골병든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지식재산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속한 분쟁해결을 위해 이원화된 특허침해소송을 특허법원으로 관할을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A중소기업 대표는 “기술을 훔쳐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봤자라는 분위기가 퍼져있다”며 “대기업 횡포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형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는 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임치제 효과 있나=지난 2008년. 정부가 대기업의 기술탈취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기술임치제도’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자료를 제3의 공인기관에서 보관, 추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기업 눈치를 봐야하는 중소기업들의 이용 건수는 지금까지 250여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KT, 삼성SDS 등 몇몇 대기업들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유럽 최대의 임치기관인 영국 NCC사에 따르면 런던 증시 주요상장사 100개(FTSE 100)중 94개사가 NCC의 임치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연간 15,000건 이상을 유치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임치기관인 아이언마운틴사는 45,000건의 임치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임치 대상물은 크게 기술상 정보와 경영상 정보로 구분된다. 기술상 정보는 생산·제조방법, 시설·제품설계도, 물질배합방법, 연구·개발보고서 및 데이터,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및 디지털 콘텐츠 등이다.
경영상 정보는 회사 기밀문서 및 주요계획, 관리정보, 고객 데이터, 매뉴얼 등이다. 또한 특허로 등록되기에 난이도가 부족한 기술이나 기업이 특허로 공시하기 어려운 영업 비밀도 임치 할 수 있다.
손승우 단국대 교수는 “기술자료 임치제도는 1970년대 초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도입돼 일반화 됐다. 국내에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선진운용기법의 도입과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없나=우선 특허관련 소송 기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계 주장이다.
장기간의 특허분쟁으로 개발기술과 회사 모두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선거사범의 경우 예외적으로 단기간 내에 법원 판결이 나온다. 특허분쟁 또한 최대한 짧은 기간 내에 종결시켜 그에 따른 손해배상까지 진행된다면 현재와 같은 대기업의 특허탈취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또다른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특허소송 관련 강연에서 특허분쟁 담당자는 중소기업과의 소송에서 이기려면 시간을 끌라는 이야기를 한다”며 “중소기업들은 자금력이 약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말들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특허분쟁이 발생되면 전사적 차원에서 대응하지만 대기업은 한 부서의 일”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되면 회사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냐”고 털어 놓았다.
■기업생태계 강화에 나설때=기술탈취 문제 등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이 커지거나 사회적 네트워크의 협력 수준이 발전하지 못할 경우 기업만이 아니라 기업·산업생태계 나아가 국가경쟁력 전반에 걸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네트워크 경제와 사회가 도래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이 개별 기업의 경쟁력 수준이 아니라 기업 네트워크 간 경쟁력 수준차이에 따라 결정되면서 ‘기업 생태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경우 중소기업 또는 부품·소재기업에 대해 단기간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원가절감이나 개발기술을 경시하는 태도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호영 한국경제연구원 전문위원은 “기업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을 취약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기업 성장 전략과는 다른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 지난 2007년 5월 16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지식재산권 관리 및 보호대책 설명회’에서 주대철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