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 중에 ‘분권화와 성과평가’라는 분야가 있다. 조직이 점점 커지다 보면 더 이상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조직을 통솔하기 힘들어져 책임과 권한을 하부조직에 이양해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권한과 책임을 내가 아닌 남에게 이양하는 것이 분권화다. 그런데 이렇게 남에게 (소위 대리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다 보니 하부조직의 관리를 위임 맡은 관리자가 자기 권한만 챙기고, 책임은 제대로 행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게 됐다.
이런 대리인 관리자들의 느슨한 행태를 조이고 바로잡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가 성과평가제도다.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잘 수행했을 때는 이에 대한 보상을, 목표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분권화와 성과평가 제도를 운영해 오던 중에 새로운 문제가 대두됐다. 분권화를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 해당부서의 관리자에게 거의 모든 재량을 허용하다 보니 그 관리자가 자기가 맡은 부서에 대해서만 모든 관심과 역량을 기울이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 이는 원래 분권화의 취지에서 보면 당연하고 맞는 일이지만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부서이기주의를 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다른 부서들과 전혀 연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부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지만, 인접부서들과 상호 협력하며 운영해 나가야 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볼 때, 너무 자기부서의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조직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됐다. 이런 부서이기주의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발전된 평가제도가 관련부서 성과반영 평가방식이다.

대기업 구매담당자 태도 바뀌어야

즉, 과거와 같이 자기가 맡은 부서만의 성과가 평가에 100% 반영되던 방식을 지양하고, 관련부서의 성과도 동시에 성과평가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부서가 달성한 성과가 평가의 60%를 차지하게 하고, 평가의 나머지 40%는 관련부서의 성과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 하에서 좋은 평가 결과를 얻으려면 자기의 성과도 좋아야 하지만 동시에 관련부서의 평가도 좋아야 한다. 자기의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관련부서의 성과가 엉망이면 좋은 평가점수를 얻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자기부서의 성과뿐만 아니라 관련부서의 성과도 평가에 반영함으로써 부서이기주의의 조장을 방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요즈음 정부 주도로 대·중소기업간의 상생문제가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그동안 불공정거래에 고통 받고 있던 중소기업들을 대기업들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화답해 많은 대기업들이 진정한 상생을 하겠다며 구호를 외쳐대고 있고 어떤 경우는 대규모의 상생펀드도 새로 설립하고 있다.

협력업체 실적도 평가에 반영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제도로는 이런 노력과 구호가 반짝 상생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 여러 차례 대기업 총수들이 모여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결의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런데도 왜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상생이 안 되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상생은 대기업 총수들이 실천하겠다고 선언해 봐야 실효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제품의 구매를 담당하는 담당자의 태도가 바뀌어야 진정한 상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구매담당자의 태도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를 평가하는 평가제도가 변해야 한다. 대기업 내에서 달성되는 자신의 성과도 좋아야 하지만 더 나아가 그가 거래하고 있는 중소협력업체들의 실적도 좋아야 그가 더 잘 평가받도록 성과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일방적인 납품단가 쥐어짜기, 무리한 자료공개 요구 등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대기업 총수들과 청와대 및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여 대기업 구매담당자의 평가를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평가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맺기를 제안한다.
즉, 대기업 이기주의를 지양할 수 있는, 중소협력업체들과 윈윈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대기업 구매담당자에 대한 평가방식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상생은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지 대기업 총수들의 구호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관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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