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문학의 고향을 찾아서…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충북 옥천군은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의 고향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르는 채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소박하고 편안한 목소리를 가진 대중음악가와 클래식 음악가가 함께 부른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1989년에 발표된 노래 ‘향수’는 시골의 작은 도시인 옥천(沃川)을 변화시켰다. 노래가사 속에 묘사된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옥천 어디에서나 시인 정지용을 만날 수 있다. 옥천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옥천역과 경부고속도로 옥천IC 앞은 물론, 그가 나고 자란 구읍의 곳곳에서 시인의 시어가 반짝이고 있다.
정지용시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만나는 첫 번째 장소는 구읍이다. 구읍은 1900년대 초, 옥천역이 생기면서 생활의 중심지가 역사 인근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옥천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구읍지역인 문정리, 죽향리, 하계리, 상계리 등에는 이곳이 옛 중심지였음을 말해주는 다양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옥주사마소, 옥천향교 등이 그것. 이 장소들은 모두 정지용 시인의 시로 꾸며진 ‘향수 30리 길’로 연결된다.
길의 시작점은 구읍삼거리이다. 이곳에 닿으면 향수 30리 길이 시작되었음을 저절로 알 수 있다. 도로 변 상점마다 정지용 시인의 시를 간판으로 달고 있는 것.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 옛사람 처럼 사람좋게 웃어좀 보시요. 정지용 詩 <내맘에 맞는 이> 中’ 혜선상회,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정지용 詩 <나무> 中’ 문정정미소, ‘꿈엔들 잊힐 리야’ 구읍할인상점,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정지용 詩 <오월 소식> 中’ 구읍우편취급국 등이다. 저마다의 공간들이 제 몸에 꼭 맞는 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구읍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다니며 공간을 돌아보아도 힘들거나 심심치 않은 이유이다.
구읍에는 정지용 시인의 흔적이 담긴 공간들도 있다. 시인이 나고 자란 생가와 초등학교이다. 먼저 둘러볼 곳은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죽향초등학교이다. 1902년, 옥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죽향초등학교의 전신인 옥천공립보통학교를 1910년에 입학해 1914년에 졸업했다. 4회 졸업생인 그가 다녔던 당시의 학교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 죽향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남아있는 옛 건물(등록문화재 제57호)은 1936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건물 옆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와 육영수 여사의 휘호탑이 나란히 서있다.
옥천교육역사관으로 사용되는 옛 학교건물에는 3개의 교실이 있다. 각 교실은 오래된 풍금과 나무책상 그리고 도시락을 얹은 난로 등이 있는 근·현대 옥천교육사 전시관, 오래된 교과서와 교복은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타자기와 등사기 등 어른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는 죽향교육의 발자취 전시관, 물레·화로·풍로 등 다양한 옛 물건들이 있는 생활용품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정지용문학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집을 둘러싼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실개천이 흐르고, 그 안쪽에 두 채의 건물과 마당이 있다. 방 안에는 약재상을 했던 아버지의 직업을 알 수 있도록 약장이 놓여있다.
사립문을 나서면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이곳에는 시인의 문학세계가 꼼꼼히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도 담겨있어 옥천문학의 대표공간이라 할 수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생전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단정히 앉아 손님맞이를 하고 있는 모형이 있는 것. 이 모습에서 생전의 시인이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한복’이라며 먹물들인 검은 두루마기를 항상 입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의 시어가 고도로 정제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까닭도 그런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지용시인의 시어를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장소는 구읍에서 보은방향 3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향수 30리 길의 종착지인 장계관광지이다.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장계관광지는 원래 놀이기구 가득한 유흥지였다. 1980년대 초반에 생겨 이제는 낡아진 공간을 옥천군이 정지용 시인의 공간으로 되살린 것.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새로운 옷을 입은 공간의 이름도 ‘멋진 신세계’이다.
이곳에는 모단광장, 모단가게, 모단스쿨, 카페프란스 등의 시설물과 일곱걸음산책로라 불리는 시문학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대청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일곱 걸음 산책로’이다.
일곱 걸음 산책로는 모단가게 옆 계단에서 시작된다. 계단을 내려서며 처음 만나는 것은 숲 속에 핀 나무 꽃들이다. 사시사철 피어있는 화사한 빛의 나무 꽃들은 겨울의 쓸쓸함을 달래준다. 이곳에 나무 꽃이 심겨진 것은 우연이 아닐 듯싶다. 일곱 걸음 산책로라는 길 이름이 정지용시인의 시 ‘꽃과 벗’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길의 이름뿐 아니라 풍경조차 시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석벽石壁 깎아지른 / 안돌이 지돌이, / 한나잘 기고 돌았기 / 이제 다시 아슬아슬 하고나. // 일곱 걸음 안에 / 벗은, 호흡이 모자라 / 바위잡고 쉬며 쉬며 오를 제, / 산꽃을 따, / 나의 머리며 옷깃을 꾸미기에, / 오히려 바빴다. // ……)>
호반을 따라 걷는 동안 정지용 시인의 시는 의외의 장소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건물의 외벽, 피로해진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을 기억하는 공간,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조형물 등에서 시인의 시가 인사를 건넨다. 현대의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시들도 만날 수 있다. 모두 22회째 이어지는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의 작품이다. 제1회 수상자인 시인 박두진을 비롯해 유안진, 정호승, 김지하, 문정희, 김초혜, 도종환 등이 그들이다.
공간을 모두 돌아본 후 향토전시관에도 들러보자. 옥천군의 역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옥천군청 문화관광 http://tour.oc.go.kr
- 정지용문학관 www.jiyong.or.kr
○ 문의전화
-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043)730-3412
- 정지용문학관 043)730-3588
- 장계관광지 043)733-7833~5
○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 - 옥천역, 하루 16회 운행, 2시간 15분 소요
[버스]
쪹동서울종합터미널 - 옥천, 10:00, 14:00, 15:10, 18:00 운행, 2시간 소요
쪹청주시외버스터미널-옥천, 06:40~20:00 17회 운행, 1시간 소요
쪹대전역 앞에서 옥천방면 640번 버스 이용, 30분 소요
○ 자가운전
[서울 - 옥천] 경부고속도로 옥천IC → 구읍방향 좌회전 → 문정삼거리, 직진 → 구읍삼거리, 좌회전 → 구읍우편취급국 앞, 우회전 → 정지용문학관
[광주 - 옥천] 호남고속도로 논산분기점 →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서대전분기점 →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 부산방향 → 옥천IC → 구읍방향 좌회전 → 문정삼거리, 직진 → 구읍삼거리, 좌회전 → 구읍우편취급국 앞, 우회전 → 정지용문학관
[대구 - 옥천] 경부고속도로 옥천IC → 구읍방향 좌회전 → 문정삼거리, 직진 → 구읍삼거리, 좌회전 → 구읍우편취급국 앞, 우회전 → 정지용문학관
○ 숙박
- 명가모텔 : 옥천읍 문정리, 043)733-7744
- 궁전모텔 : 옥천읍 교동리, 043)731-1567
- 흥림모텔 : 옥천읍 금구리, 043)731-2348
- 장령산자연휴양림 : 군서면 금산리, 043)730-3491~3, www.cbhuyang.go.kr
○ 먹거리
- 마당넓은집 : 옥천읍 죽향리, 비빔밥, 043)733-6350
- 옥천묵집 : 옥천읍 하계리, 도토리묵밥, 043)732-7947
- 미락분식 : 옥천읍 금구리, 올갱이해장국, 043)732-4845
- 아바이순대 : 옥천읍 금구리, 막창왕순대, 043)732-8813
○ 주변 볼거리 : 용암사마애불, 용암사쌍삼층석탑, 조중봉묘소 및 신도비, 삼양리 옥천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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