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희망을 이야기하고 결의를 다진다. 송년회는 으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해였다고 회고한다. 역사 이래로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사태만으로도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했다.
우리는 안보와 경제를 함께 챙겨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바쁜데 온갖 갈등은 봇물처럼 터진다. 국가 채무는 늘어나는데 성장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복지 타령만 한다. 자원은 무한하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정치판은 갈등 증폭에 앞장선다.
새해엔 어떤 소망을 이뤄야 할까. 당장 닥치는 문제를 잘 풀어가야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계절이 바뀌고 비바람이 치는 자연 현상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된다. 인간은 동·식물과 달리 환경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 미래 창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케인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장한 경제학자다. 경제 문제를 단기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기 대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지만 미래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1992년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20년 후 미국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면 좋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4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설계하라”고 조언한 경제학자가 있었다.

철저한 준비가 미래 보장

소련은 1957년 10월 최초로 인공위성(스푸트니크 1호)발사에 성공했다. 과학기술에서 소련에 앞섰다고 생각했던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서둘러 1957년 12월 인공위성(뱅가드)을 발사했으나 발사 직후 폭발, 실패했다. 실패 원인을 찾던 미국은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
교육 내용을 바꿔 인재를 양성, 우주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장기작전을 편 것이다.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했고 1961년 ‘아폴로 계획’을 출범시켜 그 결실로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디뎠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6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대학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 세대의 ‘스푸트니크 순간(Sputnik Moment)’을 맞았다”며 “스푸트니크는 미국을 잠에서 깨운 경종이었다. 그 뒤 우리가 심신을 집중한 결과 소련을 추월했다. 미래 번영의 열쇠인 과학 연구와 교육 투자에 다시 집중하자”고 촉구했다. 옛 충격을 환기하면서 지금 다시 맞은 비슷한 위기 국면을 과학기술의 발달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다.

새해 화두는 미래 창조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후 2차 대전 때 미 국방과학위원회 미사일 팀장을 맡은 로켓 제트 추진 분야의 전문가가 있었다. 1950년 중국으로 돌아가려했으나 미국의 방해로 간첩 혐의까지 받아 억류되었다가 1955년 미사일 관련 자료는 하나도 갖지 못하고 맨몸으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물음에 그의 답은 이랬다.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어떤 성과에 대해서도 묻지 말고 돈과 인재만 달라. 첫 5년은 기초과학, 다음 5년은 응용과학을 가르치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제작에 들어가면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 실제로 15년 후 1970년 중국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다. 천쉐썬(錢學森:1911~2009)이 바로 그다.
수학 교과과정을 바꾼 것이나 15년을 준비하겠다는 건 장기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할 것인가를 시사해 준다. 문제를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라는 것은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는 어려운 주문이다. 갈 길은 먼데 당장 표만 생각하는 작태가 매일 매일 연출되고 있다. 올해에는 제발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기 없는 일도 옳은 일이면 때를 놓치지 않고 추진해야 나라와 사회가 발전한다. 개인의 경우도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발전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세상일이란 단기에 해결할 일과 중·장기에 해결할 일이 얽히고 설켜 있게 마련이다. 단기과제라고 해서 서두르거나 중·장기과제라고 해서 미루면 일을 그르친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미래 창조, 새해의 화두여야 한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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