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에 사상최대의 눈폭탄! 근래 보기 드문 엄청난 양의 눈으로 인해 동해안 일대는 사실상 모든 기능이 마비되고 고립된 형국을 보여주었다. 많은 눈으로 인해 그동안 문명의 이기 속에 편리한 생활을 하던 현대인들이 눈 속에 갇힌 상황이다 보니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낯선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교통이 마비되니 몇 시간씩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허리까지 차오른 눈 속을 헤집으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습, 앞마당까지 가득 찬 눈으로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외부에서 눈을 치워주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모습 등은 다시 봐도 실감나지 않는 먼 나라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일 계속되는 눈 소식 중에 눈에 띄는 뉴스가 들어왔다. 엄청난 양의 눈으로 인해 제설 작업이 한계에 부딪히고 도로의 기능이 마비되다보니 대기업의 공장들이 멈춰섰다는 것이다. 협력업체들이 대기업에 부품을 조달해야 하는데 눈으로 인해 물류기능이 마비돼 본의 아니게 부품조달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부품조달이 멈춰서자 공장가동이 멈춰버린 대기업!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부품조달만 해주지 않아도 멈춰설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관장하는 필자는 다소 비약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기상이변에 의한 천재(天災)라고 위안삼고 불가항력으로 넘기는 기업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단지 재해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 사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현재와 같은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관행과 시장왜곡을 바로잡는 지혜를 찾지 않는다면 힘겹게 운영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누적되어 결국 부품이 조달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늘 ‘을(乙)’의 입장에서 대기업의 횡포 앞에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고 당하고만 살아왔던 중소기업들이 그에 저항해 동시에 조업과 납품을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지금까지 강자로 군림하던 대기업은 정말 순식간에 멈춰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 대기업의 살인적인 납품단가 인하요구로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날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종업원은 떠나고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납품수요만 믿고 은행융자에 사채까지 내서 수십억원대의 공장증설을 했으나 1년도 채 안돼 모기업 수주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납품예정량을 전부 무효화시켜 버리자 울분과 빚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주변 중소기업인의 소식은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해야 할 만큼 약자가 되어버린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기술 뺏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날로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행태를 예전 소작농을 착취하던 지주와 일제 강점기 우리민족을 수탈하던 일본의 파렴치한 행태와 빗대며 분노하고 좌절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한국기업의 99%를 차지하고, 88%의 고용을 창출하는 우리나라 경제의 초석이자 희망이다. 대기업의 번영과 발전은 바로 이러한 중소기업의 피땀과 눈물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상생의 악수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쪽은 대기업이다.
특히 대기업 임직원의 태도와 자세변화가 절실하다. 오늘 자신이 누리는 따뜻한 일자리와 복지가 납품·하청 중소기업 임직원의 희생의 대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행동한다면 상생은 어렵지 않은 과제라고 필자는 믿는다.
이러한 상생은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이며, 안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단순히 시혜적 차원의 지원과 보호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협력을 통해 구조적으로 공존과 상생이 가능한 관계로 전활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노력이 긴요하다.
이번 눈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에게 있어 중소기업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는 작지만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이라 하지 않았던가?

주신호
전남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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