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몸담고 있는 컨벤션 및 전시 업계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도 만약 조합이사장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 속에 포함됐을 것이다.
정부에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비즈니스서비스 분야와 관련해서 업계대책회의를 한다고 필자를 부른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3월말까지는 개방에 대한 양허안을 해당국가에 제출해야 하니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내업계의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됐다. 해외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국내업체의 의견을 수집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서비스업종 인식전환 긍정적
“현재 이렇게 개방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대부분이 큰 틀에서는 개방에 찬성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개방할 것인지 그것이 국내산업에 몰고 올 파장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대신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
정부가 내놓을 패는 마련됐고 이미 세계 각국과 치열한 눈치싸움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변했나.
국내 서비스산업은 좁은 국내시장에서만 안주해 왔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은 국내업체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몫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해 적자생존이 불가피했지만. 서비스업이 제조업과 차이가 나는 것은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무형의 아이디어를 판다는 것이다. 2005년이면 세계시장을 하나로 묶게 되는 WTO DDA체제가 시작된다. 명실상부하게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컨벤션·전시 분야에서도 국제적인 교류가 이미 시작됐다. 몇몇 해외 업체가 국내에 진출했으며 국내업체도 동남아 등 해외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 일부는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정부라고 책임이 없을까. 최근 정부는 서비스업에 대한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제조업만이 모든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도 아주 중요한 산업이며 생산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관심 가질 때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서비스업을 또 하나의 생산업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시작이다. 서비스업이 서비스를 생산한다면 뭔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팔 시장을 마련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일 만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일도 중요하고 그것이 때로는 생산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WTO협상은 국가간의 무한 경쟁에 제도라는 옷을 입히는 절차다. 운동선수가 규칙도 모르고 경기에 임할 수 없듯이 기업인이 글로벌스탠더드를 무시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경제활동에서 한 나라의 기업이 정부의 보호를 무작정 요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 기업도 해외에서 경쟁할 경우 경쟁기업이 해당국가의 보호주의 안에 숨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규칙을 알지 못하고 경기를 할 수는 없다. 국내기업들이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데 좀 더 민감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참여자가 정한 규칙이 곧 글로벌스탠더드다. 정부는 WTO협상을 하면서 관련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업계의 의지를 얼마나 반영했을까. WTO협상으로 인한 궁극적인 수혜자는, 혹 피해자는 외국기업들과 경쟁해야 되는 업계다.
바로 우리들 기업인들의 일인 것이다. 올해와 내년은 아니더라도 곧 닥쳐올 2005년의 경영실적을 가름할 수 있는 커다란 파도가 눈앞에 닥친 셈이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뜻을 알면서도 실행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기업인 각자에게 글로벌스탠더드가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 냉정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먼저 서비스 분야에서 글로벌스탠더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서 시작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규칙을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

이수연(서울컨벤션서비스(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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