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대지진과 쓰나미 사태로 일본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오랜만에 국제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정부가 실시한 각종 부양책으로 일본경제는 2009년 1분기에 바닥을 확인한 후 회복세가 지속돼 왔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경기부양대책의 효과가 줄어들고 유럽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에 의존하던 일본경기가 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권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경기가 다시 둔화됐을 뿐만 아니라 물가가 계속해서 하락해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경제는 국제위상까지 추락하고 있다. 좀처럼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외환보유액이 이제는 중국의 절반수준으로 급감했다. 수출과 GDP 규모도 각각 중국에 이어 3위로 추락했다. 올 들어 미국의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사로부터 9년 만에 강등당한 국가신용등급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분의 1에 불과한 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간 나오토 정부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무엇보다 취약한 재정으로 추가적인 재정 확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엔화 강세에 따른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을 억제하기 위해 12년 만에 법인세율을 과감하게 인하키로 결정했으나 아직까지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자체평가다.

추락하는 일본 경제

이 때문에 간 나오토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소강국면에 머물렀던 소비세 인상논의가 올 한해 내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본은 과다한 복지지출과 장기 경기침체로 재정적자를 쉽게 줄일 수 없는 상황이다. 출범 이후 간 나오토 정부는 경기부양과 재정적자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증세를 통한 ‘제3의 길’을 모색해 왔다.
현 간 나오토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5대 함정’에 빠져 효과는 의문시된다. 5대 함정이란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함정(policy trap)’이다. 그 중에서도 주가와 경기침체의 회복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리인하 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는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다. 이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이 증대돼 예측기관들은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엔화 약세에 대비해야

실제로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과정에서 20년 이상 지속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이 무력화 단계에 처해 ‘좀비 경제(zombie economy)’라고 불린다. 1990년 이후 무려 20차례가 넘는 경기부양정책은 국가채무가 국민소득(GDP)의 200%에 달할 정도로 재정수지만 악화시켰다.
기준금리도 ‘제로’ 수준까지 인하했으나 경기회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각종 미명하에 구조조정 정책을 20년 넘게 외쳐 왔으나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데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정책과 국민들 간 불신의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주요 예측기관들은 일본의 성장률이 지난해 4% 내외에서 올해는 1.5% 내외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 1월에 발표된 세계은행의 일본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4.3%에서 올해는 1%대로 하향 조정됐다. 東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약 1% 포인트 이상 성장률이 낮춰진다면 마이너스 성장률도 예상된다.
더욱이 일본 국민으로부터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간 나오토 총리의 조기 퇴진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하반기 이후 중의원 해산과 새로운 총리 선출 문제가 급부상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앞으로 일본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리 정책 당국자와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여건과 관계없이 강세를 보여온 엔화 가치가 급격히 약세로 전환될 경우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한편으로 엔화 약세에 대비하면서 환율변동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환위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