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약을 지킬 수 없음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공항 후보지로 밀양과 가덕도를 밀었던 해당지역 주민과 관계자들,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인들이 반발하고 있어 논란의 불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다고 해도 미래에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며 그게 미래의 국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추진돼야한다”면서 내년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놓을 뜻을 비쳤다. 입지평가위원회의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잘못됐다는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국토연구원이 이미 2009년에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부는 우물쭈물하다가 시간만 끌어 갈등과 혼란을 자초했다. 일이 꼬인 것은 정부 탓이다.
잘못된 공약을 내세운 후보의 책임을 물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익에 해롭고 타당성이 없는 공약은 포기하는 게 옳다. 한반도 대운하는 공약이었지만 포기하라고 해서 포기됐다. 신공항은 공약이었으니 지키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논리다.
앞뒤 따질 겨를 없이 공약을 마구 쏟아내고 돈이 얼마 들어갈지 계산은 아예 없는 게 선거판이다. 국가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데 10조원 정도는 돈도 아니라고 여긴다. 해서는 안 되는 대표적인 공약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충청권 수도 이전공약이었다.
신공항 건설도 노무현 대통령 때 검토되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영남지역 간에 뜨거운 유치전이 벌어졌고 이해관계 지역단체와 정치인들이 막장드라마 같은 혈투를 벌였다. 거기에 경제적 타당성이나 국가 이익을 따질 틈은 없었다.

득표수단 된 지역개발공약

정책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국익’과 ‘현재의 국익’은 다른 게 아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먼 미래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어떤 사업이든 타당성을 따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래의 국익을 잣대로 사업을 평가하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허튼 공약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서는 또 어떤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수도 이전, 신공항 같은 공약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쏟아질 복지공약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국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정치인의 표계산 놀음에 허리가 휘어지며 그 비용을 물어야 하는가.

허튼 공약 심판은 유권자 몫

한국의 공항사정을 보자. 3개 공항(예천·울진·김제)은 폐쇄 또는 착공하다가 그만둔 채로 있다. 현재 15개 공항 중 인천, 김해, 제주, 김포 등 4곳만 흑자를 낼뿐 나머지 11개 공항은 연간 10~70억원 선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공항 건설이 대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지방 공항이 한두 곳씩 늘어났다.
국익은 뒷전인 채 지역개발공약을 표를 얻는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화려하게 포장해서 공약 보따리에 넣는다. 국익을 따지거나 예산문제는 관심 밖이다.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건 공항만이 아니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선정도 지역 간 갈등 때문에 대전-대구-광주 세 곳에 분산 배치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어 ‘정치공항’에 이어 ‘정치벨트’가 될 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도 경남 진주와 전북 전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국가사업마다 지뢰밭이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 못해서 갈등을 양산하면 국가는 침몰한다. 지진과 쓰나미 만이 나라를 침몰시키는 게 아니다. 물가폭등에다 일자리가 없는 서민들은 ‘못 살겠다’ 아우성인데 정치권은 경제 팽개쳐놓고 지금 무슨 문제를 붙들고 있는가.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라는 건 정치인들에게 무리한 주문일까. 한국경제가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건 분명 기적이다.
앞으로는 아예 지역개발공약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허튼 공약의 출현을 막을 수 있을까. 어쨌든 허튼 공약의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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