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참으로 더디게 찾아온다. 언제나 봄이 오려나.
현실에서나, 내 맘속에서나. 남녘의 봄은 따뜻할까?
아마도 그곳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때 이르게 피어난 봄꽃 향연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향긋한 봄 향기가 내 코 끝을 스치면 지칠대로 지친 나의 심신도 한결 가벼워지리라. 섬 여행을 떠나자. 맑디 맑은 섬바다 향취에 담뿍 취해 한껏 기충전을 해 오리라.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매물도행 배에 오른다. 통영에서 직선거리로 26km 떨어진 섬. 매물도는 어떤 곳일까? 기대감을 가득 안고 배멀미를 피하기 위해 배를 바닥에 깔고 드러 눕는다. 배안 전체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니 배멀미 심한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상황이다. 한산도를 거쳐 비진도를 지나서 1시간 30여분 만에 매물도 당금마을에 도착한다.
여느 섬 마을이 그렇듯 선착장 앞,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다. 봄의 따사로움은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없다. 강한 해풍 사이로 왼쪽에 조형물이 보인다.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예술 작품이다. 그도그럴 것이 매물도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었다. 문화예술 비영리법인 ‘다움’과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탐방로 및 공공미술 예술작품들을 만들어 마을을 다듬고 있다.
당금마을은 41세대 90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어촌 마을이지만 속내는 예술미가 가득하다. 거치른 돌담, 혹은 문패에 누군가 예쁘게 만들어 놓은 손글씨 작품들. 장소 특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생활 디자인 표식이 예쁘다. 자연 그대로에 ‘아트’가 가미되면서 섬마을 분위기가 오묘하게도 따사롭고 친숙하다.
소매물도는 펜션이 들어서는 등 관광지로 변했으나 매물도는 찾는 사람이 적어 아직은 옛 모습 그대로다. 자연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기 위한 노력 때문이다. 면적 2.4㎢, 해안선길이 5.5㎞이다. 북쪽에 어유도, 남서쪽에 소매물도가 있으며, 멀리 북쪽 해상 일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1810년경 고성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섬 모양이 군마의 형상을 하고 있어 ‘마미도’라 불렀는데, 경상도에서는 ‘ㅏ’가 ‘ㅐ’로 발음되는 경향으로 인해 매물도가 되었다고 한다. 섬 중앙에 솟아 있는 장군봉(127m)을 기점으로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해안 서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매물도는 소매물보다 넓어서 주민들은 어업뿐 아니라 땅을 개간해 텃밭을 일구고 산다. 콩, 고구마, 마늘, 쌀, 보리, 양파 등 웬만한 농산물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다랑이 논 흔적도 남아 있다. 물고기도 많아서 가자미, 도미 등이 잡히며, 자연산 김, 미역, 조개류 등이 채취된다. 마을은 당금 외에 대항마을이 있다.
섬에서 무엇을 할까? 바다낚시, 스킨스쿠버, 고동잡기를 빼고 섬 한바퀴 돌아보는 일이다. 매물도를 한 바퀴 도는 5.2㎞의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다.
당금마을에서 시작된 길. 당금 언덕에서 발아래 풍치를 바라보고 나서 한산초등학교 매물도분교를 지나친다. 지금은 폐교로 변했지만 1963년부터 2005년까지 43년간 당금마을과 대항마을의 아이들을 길러낸 곳. 향후 천문대 등을 만들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에 있다.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오솔길 따라 걸으면 아이들이 소풍 나왔다는 능선이 나타나면서 눈 조망의 방향이 달라진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멋진 해식단애를 만나게 된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수림이 깍아지를 듯한 곳에서도 굳건하게 자라고 있다.
멀리 무인도인 등가도가 혈혈단신 바다 위에 떠 있고, 괭이갈매기 서식지라는 홍도도 아스라하다. 굽이굽이 오솔길을 따라 숨가쁘게 올라서면 장군봉이다. 장군봉에는 최근에 말과 장군의 형태를 그려낸 조형물을 옮겨 놓았다. 내려오는 숲길에는 남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아! 하고 탄성이 쏟아질 정도로 멋진 소매물도가 지척이다. 소매물도의 망태봉과 등대섬의 옆선을 가늠하면서 한발한발 떼어내는 발걸음이 가볍다. 야생 흑염소 떼도 예외는 아니다. 소매물도를 지척에 바라보면서 고갯길을 돌아서면 저 멀리 대항마을이 손짓한다. 150년 정도 된 소나무 한 기가 멋스럽다. 이 고갯길을 ‘꼬들개’라 한다. 200여년 전 매물도 초기 정착민들이 흉년과 괴질로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고꾸라졌다의 방언)고 해서 붙여진 슬픈 이름이다.
26가구 45명이 살고 있는 대항마을은 당금보다는 더 여유롭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텃밭이 더 넓어서인지 넉넉해 보인다. 번듯하게 잘 지어 놓은 집들도 당금보다는 많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외지인들을 살갑게 맞이한다. 말 한마디에도 정겨움이 뚝뚝 떨어진다. 마을을 둘러보다보면 곳곳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주해녀를 데려온 할머니’, ‘꽃 짓는 할머니의 집’, ‘바다 마당을 가진 집’, ‘마을을 한눈에 담는 집’ 등, 명패 마다 주민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집집마다 빠지지 않고?보이는 파란 물탱크에는 ‘물의 순환’이라는 주제로 조형물도 설치했다.
특히 해마다 당제를 지냈다는 후백나무는 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다. 대항에서 당금까지는 1km 구간. 전망좋은 집에서 멋진 사진을 담고 당금가는 길이라는 팻말을 지나면 원점 회기된다. 걷는데 총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봄바람 따라 간 섬여행. 가기 쉽지 않아 뒤돌아서면 금세 그리워지는 곳이 섬일 게다. 사진은 대항마을 전경.

여행정보
○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 11시, 오후 2시 하루 3차례 운항(1시간 30분 소요). 대매물도에서 출항시간은 오전 8시15분, 낮 12시 20분, 오후 3시 45분. 왕복 2만 700원. 주말에는 증편 운항된다. 문의:한솔해운(055-645-3717, www.nmmd.co.kr).
거제시 저구항에서도 하루 4차례 여객선이 운항한다. 대매물도에는 음식점이 없으므로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된다. 싱싱한 자연산 회는 물론 해삼, 성게 등을 먹을 수 있다. 또 매물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개발한 “매물도 어부밥상”은 예약에 한해서 차려준다(2인 기준 3만원).
이 지역에서 나오는 까시리와 참몰(모자반) 톳 같은 해초류 무침과 방풍나물 무침 등 웰빙 식탁의 전형이다. 갯바위에서 미역 작업을 하다 허기지면 성게를 잡아 즉석에서 싸먹던 게 성게 미역쌈도 차려진다.
당금마을 박성배 이장(010-8929-0706),김인옥 어촌계장(010-3844-9853), 대항마을 이규열 이장(010-4847-9696),김정동 어촌계장(010-6340-1514), 소매물도 이석재 이장(010-2810-7704) 등이 연결해준다. 또 한산면사무소(055-650-3600)와 통영관광안내소(055-640-5245), 통영시관광과(055-650-4600)에서도 숙박시설을 안내받을 수 있다.

여행포인트
매물도와 직선거리로 600m쯤 떨어진 소매물도도 연계하면 좋다. 등대섬은 하루 한두 차례 썰물 때만 길이 열리기 때문에 물 때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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