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삶을 바꾼 승부사

‘전파의 황제’로 불리는 데이비드 사노프(David Sarnoff :1891~1971)는 라디오와 TV를 대중매체로 만들어낸 미디어의 선구자이다. 그는 라디오나 TV를 발명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다만 그는 전파와 방송이 지닌 상업적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그것에 ‘올인’한 승부사였다. 러시아 민스크에서 가난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9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그는 소년 가장이 되어서 신문팔이를 하다가 마르코니 무선회사에 사환으로 들어가서 어깨너머로 무선업무를 배웠다.
1912년 4월 14일, 무선통신사로 일하고 있던 그는 이상한 신호 하나를 포착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면서 보내는 SOS신호였다. 그는 72시간 동안 구조 전파를 수신하면서 7백여 명의 생존자 이름을 밝혀냈고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알렸다. 그가 수신한 생존자 명단은 ‘뉴욕타임스’, ‘뉴욕헤럴드’를 통해 대서특필되었고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마르코니 회사의 검사관으로 승진했고, 이어서 500여개의 무선전신소를 총괄하는 재정 매니저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때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 무렵 사노프는 세상을 뒤바꿔놓을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제 아이디어는 무선으로 각 가정에 음악을 배달하자는 것입니다. 피아노나 축음기처럼 ‘뮤직 박스(music box)를 만들어 판다는 계획입니다.”
즉 오늘의 ‘라디오’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이 아이디어는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사람들은 음악이나 사람 목소리를 집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몇 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차 세계대전은 무선통신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제네랄 일렉트릭(GE)은 1919년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를 세웠다. RCA에 스카웃된 사노프는 음악 송출뿐만 아니라 뉴스, 스포츠 중계라는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내놓았고 1922년 최초로 RCA 무선수신기(라디오)가 만들어졌다.
최초로 라디오 스포츠 중계를 실시되자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RCA가 태어났을 때 미국에 보급된 무선수신기의 수는 5000대 가량이었으나 권투 헤비급 챔피언 전 중계가 이루어지자 청취자는 30만 명으로 불어났다. 몇 달 뒤, 월드 시리즈 야구 경기가 중계되자 전국 각지에 방송국들이 생겨났고, 라디오 보급 대수는 순식간에 250만을 넘어섰다.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역사적인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을 때 6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라디오로 그 소식을 들었다.
사노프의 예지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30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RCA 사장에 취임한 그는 TV시장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TV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39년 세계 박람회에서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미디어 시장을 내다보는 선견력은 너무도 탁월한 것이었다.
사노프는 라디오에서처럼 TV시장을 선도하는 경영을 펼쳐나갔고 1954년 컬러TV개발과 보급에 성공함으로서 RCA를 명실공이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웠다. 타이타닉호 침몰과 컬러TV의 대중화 사이에는 40여년의 시차가 있는데 그는 그 기간 동안 미디어 왕국을 만들었고 황제로 군림했다. 그는 현대 대중매체의 선구자로서 전 세계인의 삶을 바꾼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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