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팔팔(9988)은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숫자다. 숫자가 많다는 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그 다수가 제몫을 할 수 있어야 자랑스럽고 또 힘이 되는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이다. 인생살이도 기업경영도 어려움이 없는 때는 없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발전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고 또 변화를 이끌어가려면 제도와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함께 바뀌어야한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식구조 변화다.
올해로 23회째 중소기업 주간(5.16~5.20)을 맞는다. ‘함께하는 중소기업,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주간에는 중소기업인들이 동반성장 기반을 다지는 분위기 조성과 투명경영 실천, 근로환경 개선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과제와 방향설정은 옳다. 중요한 것은 다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선 중소기업을 옥죄는 불법·불공정 관행부터 없애는 게 급하다. 대기업 회장이 동반성장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해도 불법과 불공정 관행이 납품과정 현장에 존속하고 있는 한 의미가 없다. 대기업의 담당자는 납품에 목이 매여 있는 중소기업에게 부담을 더 많이 떠넘길 수 있고 또 그래야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 동반성장을 외치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제도보다 의식 변화 더 중요

대기업의 호황과 중소·하도급기업의 고전을 보면서 중소기업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모두 제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건 중소기업 스스로의 몫이다. 대기업과 정책 잘못을 탓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활력을 찾는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인 모두 발상을 바꾸자. 기업의 생태계는 끝없이 진화한다. 혁신 때문이다. 해외시장도 계속 뚫어야하고 대기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의 강점을 키워야한다. 할 말도 많고 분통을 터뜨릴 사연도 많을 터이지만 눈 딱 감고 ‘내 탓’이라고 외쳐보자. ‘내 탓’임을 외친다고 해서 대기업의 횡포와 제도적 잘못이 덮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에 승부를 걸 각오를 하자.
그래야 중소기업인들이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다. 일반 국민의 중소기업 관(觀)을 바꾸는 데에도 이런 각오는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찾는 발길이 잦아질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창업 열기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최고’ 다짐 기회 삼아야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세운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을 만든 주커버그는 대학을 중퇴했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한 학기만 다녔다. 구글을 창업한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대학 재학 때부터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델 컴퓨터 회장 마이클 델도 대학 중퇴자다.
학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적당히 학교를 다니고 대기업에 취업할 생각을 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법대나 의대로 몰리고 대기업에 취업해 안주할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내가 기업과 세상을 변화시켜보자”는 꿈을 가지는 젊은이들이 창업에 열을 올리거나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려야한다. 낡은 학교 졸업장 하나 들고 변화무쌍한 미래세계를 살아가기는 어렵다.
중소기업에 젊음이 넘쳐흘러야 한다. 중소기업인들의 생각이 젊어져야하고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몰려들어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에 생기가 돌고 미래가 보장된다. 일자리의 대부분은 중소기업과 창업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창업의 중요성을 널리 퍼뜨리고 창업가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대우하는 분위기를 확산해야할 이유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만들건 세계 최고를 지향해야 살아남는다. 중소기업 주간을 새로운 다짐을 하는 기회로 만들어야한다. 한바탕 잔치로 끝날 일은 아니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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