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는 보유 경영자원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관계로 중소기업은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다수의 중소기업이 경쟁적으로 존립하고 있는 시장에 자금력과 정보력이 월등한 대기업이 진입하는 경우에 기존 중소기업의 사업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그 결과 다수 중소기업이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경쟁상 불리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청이 일찍부터 대두됐다.
현행 중소기업기본법 제11조는 “정부는 중소기업자의 사업영역이 중소기업 규모에 의한 경영이 적정한 분야에서 원활히 확보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업영역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는 사업조정제도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말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이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수의 중소기업이 경영상 애로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경영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업종 및 품목을 지정·고시하고 이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자제 및 사업이양을 통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는 등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실천해 나간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합업종으로 시장실패 보완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대기업과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학자들은 ‘특정 사업영역에 대한 대기업의 신규 진입 및 사업 확장을 인위적으로 제한 또는 금지하는 것은 경쟁을 본질로 하는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합업종 선정을 통한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가 당연히 경쟁원리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반 경쟁질서적이고 무분별한 시장진입을 규제함으로써 오히려 경쟁질서가 보다 효과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정책수단에 해당한다. 동시에 이는 중소기업이 경쟁적으로 존립하고 있는 시장에 대기업이 진입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수 중소기업의 도산이나 대량실업의 발생과 같은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존립해 오던 다수의 중소기업이 축출되고, 그 결과 새로운 독과점시장이 형성되는 등 반 경쟁상태가 출현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소비자 선택권도 고려해야

적합업종 선정이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지 않고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분야 가운데 하나가 소비자의 선택권이라고 할 것이다. 적합업종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들이 보호의 틀 속에 안주해 경쟁력 제고 노력을 등한히 함으로써 양질의 제품 및 서비스를 값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소비자 선택권을 훼손하면서 ‘단순히 기존 중소사업자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정당성을 보장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적합업종 선정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해서도 안된다.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는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인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의 발휘와 적극적인 혁신활동 및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책임이 있다.
끝으로 제도의 실효성과 관련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선정된 업종에 대하여는 ‘주기적으로 대기업의 진입 및 사업이양 실태를 조사·공표하고, 대기업의 진출 및 확장시에는 사업조정제도를 활용’할 계획으로 있는 등 대기업의 자율적인 준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 강제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규정중심 사회에서 한 단계 발전해, 관련 경제주체들이 합의해 원칙을 정하고 이를 준수해 나가는 소위 ‘원칙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가기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합의된 룰에 대한 자율적이고도 성실한 실천이 뒤따를 때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 큰 사회적인 비난과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조병선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