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매입 비중 80% … 해외명품 유치에 ‘사활’

“백화점은 국내 브랜드에 대해서만 갑(甲)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합니다. 해외 명품에 대해서는 오히려 을(乙)의 입장입니다. 해외 브랜드에 비해 차별받는 국내 업체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엄청납니다.”
국내 브랜드로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A사 대표는 해외 브랜드와 비교해 백화점으로부터 받고 있는 차별대우에 대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외 명품은 수수료가 8%에 불과하고 인테리어도 백화점에서 해준다”며 “이에 대해 항의라도 하면 ‘너희도 명품이 되서 오라’는 비아냥 소리만 듣는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백화점의 높은 수수료와 함께 해외 브랜드와 다른 차별대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명품브랜드와 차별대우를 받는 유형으로 불리한 매장위치 지정(39%)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높은 수수료율 부과(16.1%), 높은 인테리어비용 부담(1.9%), 판촉사원 파견 강요(1.2%) 등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입점기업의 해외 브랜드와 수수료율 격차는 25~30% 포인트 미만이라는 의견이 32.1%로 가장 높게 나왔고 20~25% 라는 응답도 27.9%로 나타났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해외명품 브랜드 수수료율이 7~8%로 알고 있는데 30% 가량 차이가 난다”며 “백화점의 고객유치와 이미지제고 차원에서 명품 브랜드 유치에 나선다는 것을 알지만 입점업체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해외 명품 모시기 경쟁 이유는=국내 백화점들이 해외 명품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명품수요 증가와 함께 차별화 전략 때문.
유통업계 관계자는 “미국 백화점의 경우 경쟁 백화점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자체 개발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국내 업계는 MD 전문성 부족 등의 이유로 차별화 전략으로 손쉬운 해외 명품 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 명품들은 백화점과의 관계에서 갑(甲)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특정매입을 고집하는 상황에서는 해외 명품 의존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직매입 방식의 백화점 운영에 나선 NC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분야별 전문 MD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NC백화점은 의류 전문기업에서 유통으로 진출한 경우로 직매입을 통한 기존 백화점과의 차별화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특정매입에 목매는 백화점=특정매입은 백화점과 같은 대규모소매업자가 제조사로부터 상품을 외상 매입한 후 판매하고 재고품을 반품하는 거래 형태로 재고에 대한 부담을 백화점이 갖지 않기 때문에 국내 백화점들이 선호하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2009년 조사한 국내 백화점들의 거래금액 기준 매입현황 자료에 따르면 특정매입 비중은 72.3%로 직매입(3.79%) 보다 19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유통학회 조사에서도 특정매입 비율이 74%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특정매입이 높은 이유에 대해 백화점 업계의 한 MD는 “직매입 방식으로 영업할 수 있는 유통전문인력 부족이 근본원인”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고부담이 없는 특정매입방식을 선호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전문 인력의 부족 현상을 제조업과 유통업의 산업발전단계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근대 백화점의 효시인 신세계가 1960년대 오픈했고 롯데백화점이 1970년대 후반 문을 연 반면 백화점의 주력품목인 어패럴 산업이 1970년대 초 이미 대기업군으로 성장했다”며 “대기업의 주요 브랜드들은 영업권을 갖고 있는 테넌트 성격의 임대입점을 선호하게 되고 백화점 역시 상품매입에 대한 전문인력이 없어 특정매입형태를 선호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그 후 국내 백화점들은 위험요소가 없는 특정매입방식으로 오랜 기간 안정된 성장을 이룬 반면 내부의 인적역량을 키우지 못한 것이 오늘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정매입 방식 문제는 없나=특정매입을 통한 백화점 운영은 백화점 입장에서는 원하는 디자인과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고 경쟁사와 차별화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수수료율이 백화점의 지원 사항에 비해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인원보조 및 집기비용 등 대부분의 비용을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한정된 프로모션을 지원하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정매입 방식만으로는 차별화가 없기 때문에 백화점 매출을 극대화시키지 못한다”며 “이같은 특정매입에 따라 협력업체와 수수료율, 신상품 독점판매, 판매사원 로테이션 문제 등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백화점의 특정매입 방식이 백화점에게 더없이 유리한 계약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B사 관계자는 “특정매입은 입점 업체에게는 높은 수수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에서 큰 부담이되지만 백화점은 소수의 자체 인력 인건비와 광고비 등만 지출하면 된다”며 “백화점은 협력업체가 원하는 수준의 매출이 안나오면 수수료를 높이거나 퇴출시키면 그만으로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안한다”고 밝혔다.
거래조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협력업체인 C사 관계자는 “특정매입방식은 비용은 협력업체가 부담하고 이득은 백화점과 같이 나누 형식인데 전혀 룰이나 기준이 없다”며 “ 백화점과 협력업체가 부담해야 할 기준이나 수수료 인상 및 퇴출에 대한 기준도 마련돼야 백화점 측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불공정거래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백화점 수수료율 및 불공정거래 행위 실태조사 자료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화점 입점기업의 판매 수수료율 협상방식은 백화점에서 제시한 수준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51.9%로 가장 높게 나타나 수수료율 협상에서 백화점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입점기업이 느끼는 협상력 수준에 대한 응답도 68.1%가 협상력이 적다고 답했으며 수수료율 인상주기도 응답기업의 27.5%가 연중 수시로 판매 수수료율이 인상된다고 대답했다.
백화점의 판매수수료율 인상에 대한 협력업체의 대응으로는 입점기업의 원가절감 등 자구노력 강화가 44%로 나타났고 가격인상을 통한 소비자 전가가 28.5%로 조사됐다.
판매 수수료율 인상에 따른 정책적 대응방안 중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는 47.7%가 수수료 인상 상한제를 꼽았으며 계약과정에서 경험하는 백화점의 부당대우로는 동종 해외브랜드와 차별대우(27.5%), 재계약시 자동계약 연장(14.4%), 계약시 부당한 거래조건 강요 및 계약기간 중 계약 변경이 각각 8.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직매입 방식은 국내 백화점의 수수료 부담 문제에서 자유롭고, 결국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만큼 특정매입 위주의 백화점 구매방식을 직매입으로 전환해 나가야 이로 인해 발생되는 협력업체와의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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