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춘천의 전통시장인 춘천중앙시장에 작은 무대가 세워지고, 밴드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곡명은 춘천을 상징하는 ‘소양강처녀’. 드럼, 기타, 베이스, 보컬로 구성된 ‘낭만밴드’가 공연을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노래를 같이했다. 이어진 핸드벨팀의 공연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8명으로 구성된 핸드벨팀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선보였고, 잔잔한 벨소리가 시장을 가득 매웠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진행된 크리스마스 이벤트와 견줘도 손색없던 이날 공연을 준비한 것은 전통시장의 상인들이다.
㈜춘천중앙시장은 지난해 ‘즐거운예술, 신나는 일터’사업에 참여하며 이 같은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했다. 상인 밴드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일은 금세 진행됐다. 상인 중에 취미나 동호회 활동 등으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인들이 악기는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지만 합주 경험이 없는 것이었다. 상인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서로의 음에 귀 기울이며 공연을 준비했다. 소양강처녀를 새로운 리듬으로 편곡하고, 공연에서 새롭게 선보일 시장 로고송도 연습했다.
김형겸 ‘이효선홈패션’ 사장은 “취미로 하던 기타로 공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공연을 하니 시장에 다른 때보다 훨씬 북적이고, 시민들이 즐거워하니 너무 신나더라고요. 예전에는 시장이 웃고 즐기는 장소였는데 최근은 손님도 많이 줄었잖아요. 이렇게 활기찬 모습이 시장의 경쟁력이라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연이 끝나고 낭만밴드는 비정기적으로 모여 밴드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특히 기타를 연주하는 김형겸 사장은 다른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기타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밴드는 시장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물론 상인과의 관계에도 도움을 줬다.
잡화매장 ‘좋은아이들’의 직원 명화씨는 “전통시장은 다른 매장보다 상인끼리 관계가 좋지만 같이 공연을 준비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얼굴을 마주하고 공연을 준비하다보니 자주 보던 사장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다음 공연 계획은 없는지 문의하는 시민이 생길 정도였다.
김도희 현장매니저는 “그날 공연의 흥겨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많은 시민들이 지나가셨는지 언제 새로운 공연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공연 한번으로 시장 문화를 바꿀 수 없는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새로운 시장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중앙시장은 올해도 ‘즐터’사업을 신청하고 새로운 문화활동을 계획 중이다. 상인들로 구성된 풍물패를 만드는 것이다. 전통시장에서는 단오 등의 행사에서 풍물패 등을 자주 활용하는데 섭외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에 상인들로 풍물패를 구성하면 시장의 크고 작은 행사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실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모집 단계지만 벌써부터 상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기타, 드럼 같은 악기가 낯선 50대 이상의 ‘아줌마’ 사장님들이 참가 신청을 하고 있다. 이번 장구, 꽹과리 같은 악기를 구입하고, 이달부터 연습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도희 현장매니저는 “밴드는 시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이라면 풍물패는 시장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2월25일 춘천중앙시장에서 상인밴드가 공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