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의 명장(名將)이었던 김종서는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인 45세까지 본래 사헌부, 사간원 등 청환직(淸宦職)을 거친 전형적인 문신(文臣)이었지만 육진 개척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청환직은 조선시대에 학식이나 문벌(門閥)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홍문관·선전관청 등의 벼슬을 의미한다. 그가 무장(武將)으로서 성공을 거둔 비결 중 하나는 전투를 마친 장병에게 연회를 크게 베푸는 것이었다. 비용이 과다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변방에 나와 수년 동안이나 가족과 헤어져 고생하던 이들의 사기 진작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인도의 브라만 출신들을 만나 ‘도비왈라’의 생활상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다. 도비왈라란 불가촉 천민으로 대대로 빨래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루 16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만 수입은 하루 2만원이 채 안되며, 이 중 만원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빨래용품을 사는데 써야 하니 생활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거리에 침을 뱉을 수도 없어 침 그릇을 가지고 다녀야 하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부정하다 해서 비로 쓸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의 근로조건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회사들의 복지수준은 말할 수 없이 좋지만 우리의 경제수준이 많이 향상되었으므로 이들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 세계 IT업계에서 최고의 성가(聲價)를 누리고 있는 퀄컴사의 영화(榮華)는 미국 본사의 웅장한 빌딩군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실감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바로 팬트리(pantry)라고 불리는 사무실 내 간이 주방 때문인데 아침 식사를 미처 못한 직원들을 위해 웬만한 간식거리는 다 갖춰져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 보쉬(Bosch)에 갔을 때에 느꼈던 풍요로움과도 격이 달랐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기업에도 이와 유사한 곳이 있을 테지만 지난달에 그런 곳에 직접 가본 경험이 있다. 대전의 한 고객사였는데 국내의 대표적인 팹리스(필자주: 반도체 회로설계업체로 외주가공업체를 이용해 부품을 조립하고 테스트한 후 공급하는 업체)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 훌륭한 시설에 놀랐다.
화장실은 모두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고 회의실도 IT업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각종 첨단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더 감탄한 것은 휴식시간 때였다. 각 층 휴게실마다 고급 요구르트와 각종 음료수, 심지어 제철 과일까지 대형 리치인(reach-in) 냉장고에 가득했고 직원이면 누구나 필요한 만큼 먹을 수 있었다. 음식 뿐만이 아니었다.
자율 출근제가 있어 몇 시에 출근하든 일정시간만 근무하면 된다고 했다. 이는 물론 연구원들이 주종인 회사이기에 가능한 점도 있지만 다른 업종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행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의 근무시간은 공공기관이든 사기업이든 직장인의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조정돼 있다. 초저녁 진료라든가 행정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런 것들은 잠시 생색만 내다 홍보부족으로 얼마 안가 중단되는 수가 많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는 그들이 가능한 한 업무에 집중해 최적의 조건에서 높은 생산성을 내기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차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하루 종일 감정노동(emotional labor)에 시달리는 직원에게는 회사의 사소한 배려가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3만5천여업체에 60~70만명에 이르며 임시직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복지에는 물론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회사의 형편에 맞게 복지의 규모나 질을 결정해야겠지만, 이제 복지예산은 연구개발비 못지않게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항목이다.
물론 복지의 혜택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일하는 것보다 놀 때, 혹은 돼지를 키울 때보다 키우지 않을 때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모순을 선진국에서는 이미 경험했는데 우리는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복지의 성공지표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추가적으로 그 혜택을 받느냐로 측정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립해 복지의 혜택에서 벗어난 것인 지로 평가해야 한다”

김광훈
ASE 코리아 선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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