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은 금전보다 중요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투자은행들이 추풍낙엽처럼 내동댕이쳐졌다.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고 메릴린치도 다른 회사에 팔렸으며 골드만삭스와 시티은행도 휘청거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인수합병(M&A)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JP모건체이스’이다. ‘JP모건체이스’는 ‘모건 스탠리’, 그리고 런던의 ‘모건 그렌펠’과 함께 ‘모건 하우스’를 이루는 세계 최대의 금융가문이다. 이러한 ‘모건 하우스’의 토대를 만든 사람은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다. 그는 ‘JP모건체이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구해냈듯이 20세기 최초의 금융 위기인 ‘1907년 패닉(Panic of 1907)’때에도 불굴의 패기와 정신력으로 미국을 금융위기에서 구해낸 ‘금융계의 나폴레옹’이었다.
모건은 대학을 졸업하자 금융업을 하던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놀라운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국제적 금융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는 19세기말 미국에서 일어난 철도, 전기, 제철산업 등 거의 모든 산업에 손을 댔고, 그 분야를 평정한 후 금융 사업으로 일세를 풍미한 기린아다.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인 ‘US스틸’을 비롯해 ‘제너럴일렉트릭’, ‘제너럴모터스’, ‘듀폰’의 설립을 주도한 것도 모건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대단한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는 20세기 초, 미국을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1907년의 위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최악의 지진을 시작으로 해서 월스트리트를 덮쳤다. 당시의 패닉은 투기 광풍이 불던 구리와 광산 주가가 추락하면서 투신사와 영세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는데 불안을 느낀 수만 명의 예금주들이 창구에 몰리면서 비롯됐다.
증권거래소 거래마저 사실상 중단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금융계의 황제를 자처하던 모건은 월스트리트의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서 ‘긴급구제펀드’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단 15분 만에 2,500만 달러(현재가치로 6억 달러 정도)의 자금을 조성해서 증권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또한 모건은 거리로 나서서 돈을 인출하려는 군중들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몸을 던진 설득잡업에 나섰다. 모건은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서 한 달여 동안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금융계를 재조직해냈다.
그 결과 파국 일보직전까지 갔던 금융위기가 비로소 진정되었다.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모건이 혼자 힘으로 ‘중앙은행’ 구실을 해낸 것이었다. 모건은 “인격은 금전보다 중요하다. 금전으로는 인품을 살 수 없다. 내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한다 해도 나에게서 단 1달러도 빌려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금융위기를 막고 예금자와 투자자에게 예금과 주식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성공한 모건의 용기와 탁월한 지도력은 오늘날까지 ‘모건 하우스’를 지탱하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 ‘모건 스탠리’는 구름을 관통하는 번개 그림과 함께 ‘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 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라는 카피 문구를 광고로 내보낼 정도로 모건의 정신과 위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2000년 체이스 맨해튼과 합병하면서 다시 태어난 ‘JP모건체이스’의 자산 총액은 2조700억 달러로 미국 금융업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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