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기 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선진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동일본 대지진 발발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경제, 그리스 재정위기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 그리고 정부 부채한도 상한조정과 관련해 여야간 갈등을 보이고 있는 미국 등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복을 위해 역할을 담당해야 할 주요국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세 진정 등으로 국내경기는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향후 인플레 확산 전망에 따른 내수경기 위축 가능성 및 대외 경제불안 등에 따른 경제심리 약화는 중소 제조업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 제조업은 산업의 공급사슬 하단에 위치해 있는 우리 경제의 풀뿌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혹은 동반성장 논의의 핵심도 바로 이들 중소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다름 아니다. 대기업 협력사 가운데 덩치가 큰 1차 협력사를 제외한 2차, 3차 협력사들이 바로 중소 제조업체다.
중소 제조업의 성장·발전을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자생력 확보 노력, 대기업과의 동반성장 전략 등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중소 제조업체 간 상호 수평적 협력관계, 즉 수평적 네트워크 전략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협력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동종 또는 이업종 간 협력 등 다양한 형태의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日 中企 수평적거래 증가세

일본의 중소 제조업은 1990년대를 전후로 대기업과의 수직 계열화된 ‘하청(下請)’ 관계에서 ‘횡청(橫請)’으로 불리는 개별기업 간의 수평적 거래관계가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엔고로 인한 대기업 생산거점의 해외이전 가속화가 계기가 됐다.
일본의 2003년 중소기업백서에 의하면, 일본의 하청 중소기업 비중은 1981년 65.5%를 피크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하청생산을 담당해 온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특정 모회사에 편중된 의존 관계에서 거래를 다각화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청도 기존의 대·중소기업 간 전형적인 하청관계가 아닌, 많은 거래처와 다면적인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중소기업의 움직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업간 거래의 ‘메쉬(mesh)화’와 부품소재의 ‘모듈화’ 흐름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메쉬란 그물망 또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일본에는 도쿄 오오타구(大田區), 타마(多摩)지역, 히가시오사카시(東大阪市), 하마마쓰시(浜松市) 등으로 대표되는 가공형 중소 제조업 집적지가 있다. 이러한 집적지에는 10인 미만의 소기업이 8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수평적 네트워킹 활성화돼야

이들 소기업은 전문가공 분야에 특화돼 있는데, 소위 ‘동료(仲間)간 거래’, ‘공장 상호개방 및 협의회(工場見せ合いかい)’라는 소통 메커니즘을 통해 독특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東成 일렉트로빔㈜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고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을 추구한 대표적 사례다. 1977년 일본 최초의 전자 빔 용접 가공을 전문으로 창업한 이 회사는, 특정 모듈부품을 일괄생산 납품해 달라는 한 대기업의 요청을 계기로, 재료, 가공, 프레스, 조립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사에 비교우위가 있는 일을 할당·조율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동사(同社)는 이업종(異業種) 간 연대에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5개의 중소기업을 연계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광역 네트워크 ‘5TEC.NET’를 결성해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의 네트워크형 중소기업 모델은 일본의 1998년 산업 클러스터 계획 실현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본경제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중소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적인 네트워크형 중소기업 모델 구축을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은 물론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중요하다. 세부적으로는 중소 제조업 클러스터 정책을 구상하고, 클러스터 내에 소위 ‘코디네이트 기업’군(群)을 발굴·지원해야 하며, 네트워크 내부의 응집력 제고를 위한 ‘신뢰 공동체’ 형성 및 활성화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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