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처럼 세계경제가 심도 있게 연결되어 각국 기업들이 다면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생을 기초로 한 전체 기업생태계의 진화가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따라서 한 나라 경제의 풍요로움을 결정하는 기업생태계의 발달을 위해서는 다양한 혁신 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이들 사이에서 긴밀하고도 활발한 상호작용이 전개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생태계는 이러한 필수 요건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네트워크형 협력은 대기업에 의존하는 하청관계에서 탈피해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평적인 거래관계로서 기술, 인력 및 자원의 공유를 포함하는데, 잘 설계되고 원활하게 진행되는 네트워크형 협력은 개별기업의 혁신역량 축적을 자극하고, 다원적인 기업 간 협력 및 제휴를 통해 변화무쌍한 시장상황에 대응하는 힘을 키워주며, 원청기업에의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 교섭력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기획·개발·생산·마케팅 등 가치사슬에서의 분업이 이뤄질 수 있으므로 전 기능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중소기업들이 이업종 간 네트워크형 협력을 통해 고객 니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관련 산업의 기술혁신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강화의 첩경이 될 수 있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특정 기업이 복수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통합·연계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창출을 주도하는 코디네이터형과 일의 성격에 따라 코디네이터 기업이 탄력적으로 변동하는 콘서시엄형 등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형 협력이 동종기업 간은 물론 이업종 간에도 활발하게 실행되고 있는데, 고객 니즈를 민감하고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한편, 협력을 매개로 기술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소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고 선진국에서 성공사례가 비교적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소기업 간 협력의 토양은 척박한 상태다. 기술 및 신제품 개발 목적으로 동일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 간에 협력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4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기업규모가 작아질수록 협력경험도 부진하다.
이처럼 소기업 간 협력이 부진한 원인을 생태계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부족한 자원이나 역량을 주입할 수 있는 정책, 제도, 해외 네트워크 등의 역할이 아직 미흡하고, 협력 역량을 충분히 확보한 중소기업이 부족한데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기업을 찾는 작업 또한 어려운 상황이며, 중소기업 간 협력이 R&D 위주로 제한된 범위에서 1회성 협력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이 상호 경쟁과 협력을 통해 혁신하고 발전하는 공진화에 한계가 있다.
이상의 한국 기업생태계에 대한 진단 결과에 유의하면 기존의 중소기업 간 협력과 관련된 제도를 그 효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하고, 보다 심화된 협업을 독려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집약적으로 전개하는 정책 재설계가 긴요함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형 협력모델 구축 전략으로 지칭할 수 있는 정책 재설계의 중점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우선 전문제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역 클러스터 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기업 네트워크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할 전문가인 네트워크 브로커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기술융합의 경험, 경영자의 평판, 지식 인프라의 활용능력을 등을 종합해 클러스터 내에 중소기업 간 협력을 원활하게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기업을 판별·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디네이터 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간 협력 촉진기금’을 조성해 지원하는 한편, 이들의 사업시스템 구축 및 신제품 기획역량의 배양을 후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로는 네트워크의 응집력 제고를 위해 신뢰공동체의 결속과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소통 및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의 체계적 운용,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신뢰 공동체 구성 지원, 재정·금융지원 등이 구체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끝으로 중소기업 간 네트워크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 및 기구를 정비하고, 협력 관련 지원 근거와 제도를 통합하는 법률 제정을 통해 부처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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