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중기업 성공DNA - 덴카

장어를 양식하는 화학회사가 있다. 바로 전기화학 전문기업 덴카(電氣化學工業,덴키카가쿠코우쿄우)라는 회사다. 덴카의 사업분야는 그 이름만큼이나 광범위하다. 무기재료에서 유기재료, 전자재료, 고분자재료까지 화학기업이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
특히, 100년 가까이 축적한 카바이드 기술을 바탕으로 시멘트사업에서부터 최첨단 전자재료 사업까지 폭넓은 사업영역을 보유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100년 가까이 사업을 지속해온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덴카의 역사를 돌아볼 때 흥미로운 점은, 풍부한 자원을 백배 활용해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화학산업은 석회석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부한 석회석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기술을 축적, 사업을 다각화한 기업이 대다수다.

100년 된 기술 끊임없이 응용

이는 덴카도 마찬가지이다. 덴카가 핵심역량으로 꼽는 것이 오랜 세월 축척해온 카바이드 기술이다. 카바이드의 원료가 바로 석회석이기 때문이다. 덴카는 1915년, 카바이드 사업으로 시작했는데, 주력 공장인 니가타현 오우미공장(靑海) 주변에 풍부한 석회석과 강이 흐르고 있어 카바이드사업을 위한 최적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후, 덴카는 카바이드 생산에서 남은 석회석을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시멘트 사업을 시작했고, 다음에는 시멘트의 강도와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특수혼합제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1962년에는 공업화가 어렵다던 합성고무 클로로프렌을 일본 최초로 개발해 사업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덴카는 화학기반 기술과 시멘트 기업의 노하우를 결합해 특수혼합재료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분야에서 개척자로서 토목, 건축의 영역까지 진출하며 다양한 시장니즈에 대응하는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
덴카의 다양한 시도를 잘 보여주는 사업으로 장어양식을 들 수 있다. 덴카의 오우미공장에서 남은 열과 칼슘(ph 7.2)이 풍부한 히메강(姬川)의 청류(淸流)를 이용해 장어를 양식하는 것이다. 온수와 칼슘은 장어양식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덴카는 1973년부터 장어양식을 시작하였는데 현재 덴카의 장어는 관동지방에서 최고의 맛과 품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덴카는 그 동안 축적해온 기술을 바탕으로 자사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사업을 전개, 제품의 차별화를 추진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클로로프렌 고무이다. 주로 자동차 엔진 주위에 사용하는 클로로프렌 고무는, 카바이드에 물을 투입했을 때 발생하는 아세틸렌가스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 인데, 바로 여기에 덴카의 축적된 기술이 위력을 발휘한다.
카바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2000℃ 이상의 온도를 제어하는 소성기술이 필요하고, 아세틸렌가스가 주원료인 아세틸렌 블랙(망간건전지 원료)을 만들려면 분체조절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기술을 모두 갖춘 회사는 덴카 외에 보기 드물다. 또 반도체 및 파인세라믹에서 사용되는 용융실리카(Fused Silica) 역시 이 두 가지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생산이 가능하다. 덴카가 용융실리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융실리카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

또한 투명성과 내열성이 뛰어난 크리아렌(SBC수지)은 PET병을 감싸는 필름원료로 일본 내에서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처럼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차별화된 소재개발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덴카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특허관리를 통해 기술력을 고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 중에는 신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특허출원을 하지 않는 블랙박스 전략을 쓰는 기업도 많은데, 덴카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전체 제품에 대해 특허통신부(特許通信簿)를 작성하고, 각각에 사용되는 특허 기술을 평가함으로써 사업부문마다 경쟁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회사 경영은 실패의 본질에서 배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후의 경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덴카 카와바타 세이키 회장의 말이다. 이렇듯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철저한 기술개발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는 덴카. 우리는 덴카의 사례를 통해서 미래 산업 개척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황래국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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