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는 제2의 창업… 국가 경쟁력 원천”

자산규모 500억원대인 B사. 지난 70년대 중반 창업한 이 회사 김 대표는 나이가 들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싶지만 고민이 많다.
외국에서 공부한 아들이 승계했으면 하는 것이 속마음. 그러나 전문직에 종사하다 보니 제조업에 관심이 없고 상속세 부담도 걱정거리다. 전문경영인도 생각해 봤지만 회사에 대한 애착이 미덥지 못한 것이 내심 걸린다. 세무사에게 컨설팅을 받은 결과 2세 경영인이 내야할 세금은 100억원대로 거액의 세금 문제 때문에 김 대표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매출규모 500억원대의 탄탄한 A사는 창업자가 지병으로 갑자기 사망, 2세 경영자가 할 수 없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포함한 200억원의 재산을 상속받은 신임 대표는 1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물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세금문제로 고민하던 이 대표는 40억원의 세금은 주식으로 물납하고 나머지는 부동산 담보대출로 처리했다. 그러나 창업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거래처가 동요하고 종업원들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아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중소기업 창업 1세대의 노령화’가 급격화 되면서 가업승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부의 정책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최근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의 독일식 가업승계 상속세 감면 추진 발언 이후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원활한 가업승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가업승계 왜 필요한가 = 70~80년대 고도 성장시대를 열었던 중소기업 창업 세대의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같은 고령화는 전체 인구구조의 고령화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으로 중소기업 CEO의 평균 연령도 가파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3년 48.2세이던 중소기업 CEO 평균 연령이 10년 후인 2004년 52.7세로 늘어났다. 또 중소기업 경영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 인구 비율도 16%대까지 육박했다. 이러한 고령화는 산업화 역사가 긴 독일과 일본의 경우 이미 시작돼 비슷한 전철을 밟았고 적극적인 가업승계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조병선 숭실대 교수는 “독일에는 중소기업 중 단독으로 세계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기업이 5~6백개나 되는데 이들 기업 역시 대부분이 일본처럼 가족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며 “경영승계는 선진국의 튼튼한 경제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장수기업과 연계해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특히, 경영승계는 해당 기업자체의 운명은 물론이고 그 기업과 이해를 같이하는 다양한 사람과 조직,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
경영승계가 원활하지 못해 경영자가 고령화 될 경우 적극적인 자세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보다는 현상유지 차원의 안전 경영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투자가 위축되고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 활동이 부진한 것은 물론 기업가치 하락도 염려된다.
특히 경영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폐업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생산설비와 근로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수십년간 축적된 노하우가 없어지는 등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걸림돌은 없나 =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기업들이 승계과정에서 가장 애로를 느끼는 부분은 과중한 승계비용. 이과정에서 부담하는 상속·증여세 때문에 경영권을 넘기거나 아예 기업을 청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의 상속세·증여세율은 30억원 초과분에 대해 50% 세율이 적용된다. 특히 상속세를 내기 위해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양도세를 부담하기 때문에 부동산 매각 대금의 상당부분이 세금으로 지출된다. 경영승계를 준비하는 2~3세 중소기업인들은 “주식을 받는 것이지 돈을 받는 게 아니어서 세금을 내려고 집 팔면 전세금도 안 남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한다.
세법상 기업들의 주식평가액이 높은 것도 문제. 비상장법인은 부동산평가액이 취득가액이 아닌 시가 기준으로 주식평가액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해 주식평가액을 할증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한해 내년 말까지 상속증여분에 한해 할증평가를 면제하고 있는데, 한시규정이 아닌 영구규정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계 주장이다.
상속인 1인에게 기업지분을 전부 상속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녀 간 재산분쟁 가능성이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영승계 후 까다로운 사후관리 조건 완화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상속 이후 10년간 주 업종을 유지해야 혜택을 받지만, 이는 후계자의 신사업 추진에 치명적인 제한요소가 되는 만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계 주장이다.
가업승계를 위한 창업주와 2~3세 경영 후계자와의 원활한 소통 문제도 시급하다. 자녀가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거나 임직원과 갈등을 빚는 일도 잦다. 한영수 한영넉스 대표는 “창업 1세대들의 대부분이 자수성가형인 반면 2~3세 경영인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글로벌 감각을 갖췄지만 리더쉽과 승부근성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며 “창업주 세대가 다양한 경험에 근거해 안정적인 경영을 하는 반면 2~3세대들은 트랜드 변화에 민감해 견해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세 경영인인 (주)유명사 이구 차장은 “조그만 실수에도 창업주 세대들은 불안해 한다”며 “다니던 회사도 큰 결심으로 그만뒀는데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차장은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1~2세대간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며 “가업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 보다도 1~2세대간 소통이 막힐 경우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했다.

□ 해결방법은 없나 = 우선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이 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폐지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만큼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독일식 제도 도입이 유력하다. 독일은 2009년부터 고용실적과 연계한 상속세 감면제도를 도입했다. 가업승계 이후 7년간 고용을 100% 유지하는 경우 상속세를 전액 면제해 주며 5년간 고용 80%를 유지하면 상속세 85%를 감면해준다. 이같은 방안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일자리부터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으로 독일 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국내 중소기업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승계시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주식 매입 펀드 신설도 필요하다. 강상훈 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장(동양종합식품 대표)은 “가업승계시 세금을 낼 돈이 없는 경우가 많아 회사 자산을 팔지 않고 물려받은 주식 일부를 매각해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면 기업의 생산 활동이 유지될 수 있고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국의 상속세 제도 비교

중소기업계의 가업승계 원활화를 위한 제도개선 요청에도 불구하고 상속세제는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엄격한 편이다. 특히 기업자산 승계시 상속세 부담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상속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 글로벌 조세정책 어디로 가나 =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투자와 소비를 늘려 일자리를 유지·확대하는 고용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이를 위한 조세정책은 성장잠재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생산요소 공급 확보측면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상속세제 또한 폐지 및 자본이득세로 전환, 세율인하, 가업자산 상속에 대한 세제지원 등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는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캐나다, 호주, 포루투갈, 스웨덴 등은 자본이득세로 전환시켰다. 상속세율 인하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아래 영국의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을 80%에서 40%로 낮췄으며 미국은 1981년 70%에서 단계적으로 낮춰 현재 35% 수준이다. 일본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75%에서 50%로 낮췄으며 대만은 50%에서 10%로 떨어뜨렸다. 또 기업자산에 대한 높은 상속세 부과에 따른 상속기업의 고용 감소와 유동자산 감소를 예방하기 위해 세부담을 완화하고 있으며 가업상속공제율은 나라별로 독일이 85~100%, 영국 50~100%, 일본 80%이나 한국은 40%에 불과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최고세율은 5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최고세율 적용 과세표준 구간도 30억원 초과로 독일 402억원, 일본 40억원 초과에 비해 엄격한 수준이다.

□ 상속세 부담 어느 정도 차이나나 = 대한상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상속재산을 총 170억원(비상장주식 100억원)으로 가정할 경우 상속세부담이 한국 42억9천만원, 독일 5억5천만원, 영국 5억9천만원, 일본 12억7천만원 등으로 나타나 주요 선진국에 비해 3.4~7.8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상장 중소기업 주식 100억원에 대한 국내 기업의 상속세 부담은 25억2천만원으로 독일의 2억5천만원의 10배, 일본 5억6천만원의 4.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자산 상속에 대한 세제지원의 폭이 좁고 높은 상속세율, 엄격한 과세표준 구간, 유산세 과세체계 운영 때문인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에 따라 ▲기업상속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상속세율 인하 및 과세표준 구간 완화 ▲상속세 과세유형 전환 등의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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