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동네 빵집 다 죽는다”

□무엇이 문제인가=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동네 빵집의 관계가 골목상권을 초토화 시켰던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닮은 꼴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엄청난 자금력과 마케팅을 바탕으로 골목 구석구석에 진출하면서 빵집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상권을 형성한 동네 빵집에 프랜차이즈 전환을 강요하거나 바로 옆에 점포를 내 결국 문 닫게 만들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와는 애초부터 경쟁 자체가 안되는 동네 빵집으로서는 시장경제 원칙만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18년째 김용현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현 사장은 몇 년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빵집에서 30m도 안되는 위치에 파리바게뜨가 생긴 것. 전보다 매출이 30%가 줄었다는 김 사장은 주변에 있던 7개의 동네 빵집들이 모두 문을 닫고 다른 업종으로 바꾸는 것을 목격했다.
김 사장은 처음 대형 프랜차이즈와 경쟁하려니 막막했다고 밝힌다. 단골이 파리바게뜨로 향하는 것을 보자니 속상했다는 것. 그러나 몇 년간 매주 새로운 빵을 만들어 선보이고, 아파트 한 채 값을 투자해 인테리어도 바꾸고 나니 예전 손님을 많이 회복했다고 덧붙였다. 동네 주민들과 신뢰가 없었다면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빵은 대부분이 냉동 상태에서 배달된 제품을 따뜻하게 데우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제빵 자격증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동네 빵집과 달리 자격증이 필요 없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이 생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제빵 기능인력 양성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기설 월간베이커리 편집장은 “냉동 빵을 단순하게 오븐에 넣어서 굽는 정도인 기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갖춘 제빵사가 없다”며 “장인 정신이 녹아있는 국내 제빵업계 발전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고 밝혔다.
김 편집장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즉석 반죽으로 빵을 만드는 윈도베이커리보다 득세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제빵 기술이 단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판치는 불공정거래=30년간 빵을 만들어 왔다는 조모(52)사장은 지난 2008년 파리바게뜨로부터 상표전환을 제의받았다.
자신의 가게를 고집한 조 사장은 파리바게뜨로부터 바로 옆 가게를 확장해 파리바게뜨를 입점시키겠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조 사장은 결국 8년 가까이 운영해온 빵집을 파리바게뜨에 넘기고 서울 낙성대역 근처에 새롭게 빵집을 열었다.
그곳 사정도 마찬가지. 조사장은 결국 인천으로 돌아와 새로 빵집 매장을 10월중에 열 계획이다. 조 사장은 “주변에서는 빵집을 왜 또 인수했냐고 하지만 30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사장시킬 수 없었다”며 “직접 만든 건강빵의 장점과 리뉴얼 공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성동구에서 뚜쥬루 과자점을 운영했던 윤모(57)사장은 2009년 잘나가던 빵집을 파리바게뜨에 빼앗기다시피 했다.
윤사장의 뚜쥬루 과자점은 하루 매출이 5백만원에 달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천연 효모를 14시간 발효시켜 만든 호두빵이 지역 명물로 직원도 20여명이 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주가 윤사장을 찾아와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아쉽지만 윤사장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두 달 뒤 윤사장이 운영했던 뚜쥬루 과자점에는 파리바게뜨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미 가게 건너편에는 파리바게뜨가 영업하고 있는데도 같은 회사의 프랜차이즈가 또 들어선 것이다. 윤사장은 “나중에 건물주에게 확인을 해 보니 보증금 8천만원 월세 7백만원의 임대조건이 보증금 5억원, 월세 1천8백만원으로 올렸다”며 “자금력이 약한 소상공인들이 버틸 수 있는 경쟁구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윤사장은 서울에서의 빵집 운영을 접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천에서 빵집을 운영했던 A사장도 같은 상가 건물 안에 파리바게뜨가 입주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었다. 파리바게뜨 측이 건물 주인을 찾아가 임대료를 올리는 조건으로 상가계약을 해 버린 것. 그 여파는 A사장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기존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통보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수준이었다. 파리바게뜨가 문을 열자 매출이 급감, 20년간 운영해오던 빵집 문을 닫게 됐다. 자해할 정도로 괴로워했다는 A사장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현재 A사장의 빵집은 파리바게뜨가 확장해서 영업을 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경쟁과열=지난해 말 벌어진 쥐식빵 사건. 이 사건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간 점포확장 경쟁이 과열권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점포 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여 한 지역에 제과점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상대방 제과점이 들어오곤 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최근 파리바게뜨 2980개점, 뚜레쥬르 1409개점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 3년간 점포증가율은 각각 66%, 63%에 이를 정도다.
뚜레쥬르를 운영하며 쥐식빵 자작극을 벌인 김모(36)씨는 1억원의 빚을 떠안고 자신이 제빵사로 일했던 가게를 인수했다. 반경 5백미터 안에 있는 파리바게뜨 매장 2곳과 경쟁을 해야 했다. 지난해 12월 들어서는 본사 지침에 따라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1억1천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심정을 밝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종류가 많아졌고 분위기가 밝아진점이 긍정적이다.
그러나 가격만 올려놓았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2년 서울로 이사 온 주부 K씨(42)는 수년간 이용해오던 빵집이 1년 전에 파리바게뜨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나름대로 빵이 맛있어 1주일에 한번 꼴로 이용했다는 K씨는 7백원했던 단팥빵이 파리바게뜨가 되면서 1천원으로 올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만5천원이면 샀던 작은 케익들은 2만원 밑으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호소한다. K씨는 “맛은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가격만 20~30% 올려 논 셈”이라며 “몇일전 3,300원짜리 초콜렛 조각 케익을 사러 갔지만 상태가 별로 인 것 같아 그냥 2만2천원 주고 케익을 샀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빵집 전쟁에 속속 뛰어드는 재벌가=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외식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사업 결과가 빨리 나오는 특성상 재벌 3세대들의 외식업 진출이 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베이커리 업계도 마찬가지. 삼성그룹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자회사인 보나비를 통해 빵을 함께 파는 커피 전문점 ‘아티제’를 운영하고 있다. 매장수는 20여개로 아직 적은 편이지만 현재 서울 강남권에만 15개의 매장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다.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은 지난 2005년, 조선호텔 베이커리를 설립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에 독점적으로 빵을 납품하고 있다.
롯데그룹 3세인 장선윤 대표는 지난해 말 식료품 제조업체 ‘블리스’를 설립하고 롯데백화점내에서 프랑스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 ‘포숑’을 전면에 내세워 베이커리 사업을 시작했다.
□대책은 없나=생사기로에 선 동네빵집을 살리기 위해 소상공인들은 ▲입점 거리제한 ▲카드수수료 개선 ▲영업시간 제한 ▲자격제도 신설 등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입점 출혈경쟁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제과점 동종업종간 입점 제한거리를 반경 500m~1㎞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특히 카드 수수료가 평균 3.7%에 달하는 만큼 조속한 수수료 인하는 물론 영업시간 제한을 통해 동네빵집과 공생발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7인의 제과명장 중 한명인 안창현 대한제과협회 인천시지회장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무차별 확장에 동네 빵집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의 골목상권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동네 빵집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인천소재 중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안스베이커리 매장 너머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인 파리바게뜨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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