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 심리’ 합리적 판단 가로막아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객관적 분석과 합리적 판단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은 이런 비합리적인 모습이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시인 심리’가 작용한 탓이라고 한다. 인류는 약 2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99% 이상의 세월을 수렵채취 시대에서 보냈는데, 이 때문에 인간의 뇌는 수렵채취 시대에 적합하도록 진화하였고 그렇게 형성된 ‘원시인 심리’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원시인 심리는 첫째 ‘감정이 우선이고 이성은 나중’이라는 심리다. 인류의 뇌에서는 즉각적인 반응과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서 감정 체계가 먼저 발달하였고 이성체계는 사회 속에서 남을 설득하기 위해 나중에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로 했던 원시시대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감정적 반응이 우선하게 되면 두려움이나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쾌감을 주는 것에 우선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경영자들도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때 현실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받아들여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확장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도 소비자가 필름 카메라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시장분석 보고서를 내곤 했다.
두 번째 원시인 심리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게 중요’하다는 의식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더 민감하며, 미래의 큰 이득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득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장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던 원시시대의 생존 원리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 유지 및 현재 중시 경향은 경영에서 손실회피 성향과 근시안적 태도를 초래한다. 매몰비용(sunk cost)에 대한 집착으로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개발 단계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으로 중도에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엄청난 손실을 발생시키고 나서야 뒤늦게 운항을 중단했다.
세 번째 원시인 심리는 ‘남을 따라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심리이다. 인간에겐 행동이나 의견에서 권위자나 다수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려는 성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성향이 생겨난 것은, 원시시대에는 집단을 따르지 않는 자는 무리로부터 배척당하거나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서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현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서도 나타난다. 모토로라의 이리듐으로 대표되는 위성통신 사업이 그에 해당한다. 인마르셋, 글로벌스타, 오딧세이 같은 많은 컨소시엄들은 모토로라가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위성통신의 시장 잠재력이 입증된 것으로 생각해 너도 나도 이 사업에 돈을 투자하였다. 하지만 이리듐은 위성통신 사업에서 실패했고, 이를 따라한 많은 기업도 실패의 운명을 함께 했다.
우리가 원시인 심리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CEO의 의사결정 지원조직의 자율성을 제고하고, 적극적으로 외부의 조언을 구하고 청취해야 한다. 편향된 의견과 오류를 정정할 수 있도록 반대 의견 개진을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원시인 심리’는 위험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쉽게 작동하기 때문에 조직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 문화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김창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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