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 우려”

최근 국내 경상수지 흑자 폭 감소와 산업활동 지표가 하락하는 등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글로벌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2008년 리먼쇼크 당시 위기 해결사로 나섰던 정부 부문이 부채급증으로 경기 부양능력이 약화되면서 선진 각국의 가계와 기업의 수요심리가 쉽게 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선진국의 소비 및 투자부진은 세계경제 침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중국 등 거대 개도국이 제한적인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으나 경기둔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글로벌 재정·금융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로 장기불황과 더블딥(이중침체)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지구촌 경제가 활력을 찾는데 긴 시간이 걸리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실물경제가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실물경제 적신호 켜지나=실물경제에 조금씩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국내 산업생산이 7,8월 두 달 연속 줄어든데 이어 동행지수와 선행지수의 동반 상승세도 멈춰섰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8월 광공업 생산은 전월대비 1.9% 줄어들며 7월(-0.3%)에 이어 2개월 연속 감소한데다 감소 폭마저 커졌다. 특히 우리 주력 상품인 자동차의 부진이 두드러지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광공업 생산감소에 대한 자동차 생산 감소 기여도는 0.8%포인트나 됐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면서 수출 출하도 전월대비 0.2% 줄면서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 가운데 자동차 수출 출하는 전월대비 2.6% 줄었고, 전기장비와 석유정제 등의 수출 출하도 각각 9.5%, 8.0% 감소했다. 내수 출하 역시 전월대비 2개월 연속 줄었다.
또 다른 문제는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가 모두 상승세를 멈춰 섰다는 점. 선행지수 10개 구성지표 가운데 건설수주액과 순상품교역조건, 금융기관유동성을 제외한 7개 지표가 모두 하락했다. 특히 최근 국내외 경기전망이 악화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불안감은 실물경제 침체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中企 장기침체 우려=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8월 수출중소기업 3백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조사 결과 중소기업들은 최근의 재정위기가 단기적 금융 불안에 그칠 것이라는 응답이 45.4%로 나타났으나, 금융위기 수준으로 확대될 것 이라는 응답이 10.5%, 글로벌 경기침체로 확대될 것이라는 응답이 44.1%로 절반이상(54.6%)이 최근 금융 불안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또한, 금융시장 불안이 우리경제에 가장 크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수출감소(42.2%)와 내수부진(27.2%), 일자리감소(17.9%), 설비투자감소(12.1%) 등을 꼽았고 금융불안이 본격적인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긴축경영 (55.3%), 중·장기적으로는 투자축소(20.4%), 고용축소(13.1%)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응답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조기에 해소되지 않을 경우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했다.
글로벌 금융불안에 대한 정부대책으로 중소기업 자금지원 확대(33.5%), 안정적인 환율수준 유지(21.4%), 안정적인 금리수준 유지(19.2%), 충분한 외화유동성 확보(15.0%) 등을 꼽았다.
전년대비 자금수요 전망에 대해 증가 응답이 34.8%, 감소 응답이 25.9%로 나타났고 현금확보, 환리스크대비, 사업다각화 등 경제위기에 대해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한 중소기업은 7.3%에 불과해, 대다수 기업들이 위기 확산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활력 떨어진 글로벌경제=전 세계 제조업 활동이 지난 9월 2년여 만에 처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산정한 세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 따르면 PMI가 지난 8월 50.2에서 9월 49.9로 하락했다. PMI가 50보다 낮으면 전달에 비해 기업의 생산 활동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JP모건의 PMI가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나라별로는 프랑스, 스페인 등 유로존 주요국과 일본, 인도 등에서 생산 활동 위축이 두드러졌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제조업은 호조를 보였다.
긴축정책으로 허리띠를 조이고 있는 스페인은 최근 2년간 가장 급격히 PMI가 하락했다. 프랑스도 두 달 연속 생산 활동이 감소했다. 유로존에서 형편이 가장 나은 독일도 생산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도의 제조업 경기도 월별 기준으로 2008년 말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일본도 5개월 만에 처음 생산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대지진 복구 사업 덕을 보던 경기가 후퇴하고 있음을 뜻한다.
중국은 9월 PMI가 53.0으로 지난달 50.6에 비해 호전됐다. 그러나 평년 9월에 비해 지수 상승폭이 작았다.

□유럽재정위기 어디로 가나=유럽재정위기의 향방은 스페인,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재정위기가 ▲현상황 지속(확률 70%) ▲위기 심화(25%) ▲일부 회원국 유로존 탈퇴(5%) 등 3가지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연구소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장불안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서는 긴축을 통한 채무상환능력과 유동성 지원 확보를 꼽았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두가 단기간 내 높은 성장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현실적으로 강도 높은 재정긴축 정책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으나 반대여론과 사회적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걸림돌이 남아있다.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긴축 의지를 갖고 있으며 EU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해 이들 국가의 국채를 매입하는 등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두 번째는 스페인 저축은행 부실확대, 미국 더블딥 등 돌발악재 발생에 따라 재정부실화 위험이 커져 채권금리 급상승에 따른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경우다. 이 경우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투자 및 소비부진과 교역위축으로 세계경제는 성장률이 현 상황에 비해 최소 1.5%p 이상 줄어들며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신청 이후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있는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이 대규모 채무탕감을 조건으로 유로화 체제에서 탈퇴하는 경우다.
이같은 일부 회원국의 탈퇴를 계기로 유로화 해체 논의가 본격화 될 가능성이 크며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이원적 유로화 체제 구성과 유로화 체제 완전해체 등도 논의 될 수 있다.

□현금확보 비상=미국과 유럽 재정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위기시 일단 현금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학습효과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최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0월7일까지 회사채 발행 규모는 10조930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조1412억원)보다 20%가 늘어났다.
현대제철은 지난 7일 3천2백억원 규모의 4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고 현대차도 하루 앞선 6일 차환자금 목적으로 3천억원 규모의 5년 만기채 발행을 마쳤다.
지난달에도 포스코 (5천억원), 호남석유 (5천억원), LG전자 (1천9백억원), GS칼텍스(2천5백억원), LG실트론(1천억원), SK C&C (1찬억원) 등이 원자재 구매 결제 등의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3~5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금융권 대출도 줄을 잇고 있다. 대한통운은 지난달 30일 차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1200억원을 차입했다. 같은 날 아시아나항공도 운영자금용으로 550억원을 차입했다.
이들 대기업과 대기업 계열사가 현금 확보에 목을 매는 이유는 불투명한 경기전망 때문. 선진국발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불안이 제조업 위축 등 실물경기 하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中企에 문턱 높은 은행=대기업과 달리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회사채 발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나마 기대볼 만한 증시도 약세장이 이어지면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지난 8, 9월 유상증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 기간 비상장사의 유용한 자금 확보 수단인 기업공개(IPO)도 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은행 문은 여전히 높다. 은행들도 위기 체제로 전환하면서 중소기업 대출 심사가 엄격해졌다.
지난 8월말 기준 국민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전달말보다 1322억원이 줄었다. 신한은행도 4490억원, 우리은행은 4541억원, 외환은행은 3301억원, 하나은행은 554억원이 줄었다.
비올 때 우산뺏는 은행들의 대출관행은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16개 국내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출행태 서베이(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은행들의 종합 대출태도지수는 -1로 전분기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종합 대출태도지수는 2009년 4분기 -4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출태도지수는 높을수록 은행들이 대출에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는 19에서 13, 대기업에 대한 대출태도는 6에서 3으로 떨어졌다. 반면 대출수요지수는 중소기업이 22에서 25로 높아졌고, 대기업은 6으로 전분기와 같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돈을 구할 데가 없다 보니 사채시장이나 고금리 제2금융권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책은 없나=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돼 중소기업에게 충격을 미치기까지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그러나 지속적인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아직까지 실물경제 위기로 옮겨 왔다는 뚜렷한 지표는 없으나 가능성을 열어 둘 필요가 있다”며 “금융위기가 전이 될 경우 중소기업 신용경색이 가장 우려 된다”고 밝혔다.
실제 중소기업계는 2008년 리먼사태 발생 직후 한국은행 총액대출한도 확대, 대출연장 거부 및 조기상환 요구 금지 등 은행 창구지도, 신·기보 등을 통한 신용보증 공급을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 발생 이전에 출구전략을 통해 대부분 지원정책이 환원된 상태로 지원체계 점검이 필요하다. 지난 9월 22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올 4분기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전분기와 동일한 7조5천억원으로 결정했다.
금융위기 당시 총액한도대출 규모가 10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조5천억원이 적은 규모다.
정부도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 위기가 심화되는 조짐이 보이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음달에도 경기지표가 하락하면 국내 실물경기가 본격적인 하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위기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정건전성을 높여 위기대응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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