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해 전부터 걷기 대세가 시작되더니만 지금은 도심 근교 산은 인산인해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 보기는 어렵지 않다. 단지 건강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딱히 여가를 즐길 게 없을 뿐더러 생산적인, 경제적인 일 중에서 걷는 것만큼 유용한 게 없다.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돈 적게 들이고, 건강 챙기고, 맑은 공기도 쏘이고, 여행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사조가 되는 셈이다.

도심 속의 산들이 제법 많은데 대모산(293m)과 구룡산(306m)도 그 중 하나다. 대모산은 서초구와 강남구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으로 불렸다. 그러다 태종의 헌릉이 조성된 후부터 어명으로 대모산(大母山, 큰어머니 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또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설과 여자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는 설도 있다.
등산로가 여럿이다. 양재역, 수서역, 대모산역을 이용하면 된다. 필자는 초행이라서 대모산역을 선택한다. 그런데 웬걸, 산행로를 찾기가 어렵다. 걷기에는 멀다는 말에 택시를 잡아타고 대모산 자연학습장 앞에 멈춘다. 평평한 생태로를 따라 10여분 정도 걷는다. 채마밭에서 나온 가지, 호박 등을 팔고 있는 할머니와 많은 등산객들을 만난다. 그리고 불국사(일원동 442)라는 아담한 사찰을 만난다.
고려 공민왕 2년(1385) 진정국사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약사절이었단다. 당시 인근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돌로 된 부처님을 뒷산에 모셨다. 그 부처님을 모시면서 생겨난 사찰 이름이다. 그 후 조선 말 고종 때 헌인릉에 물이 났다. 이 방지책으로 불국사의 약수터(현 성지약수터)의 수맥을 차단했더니 능역에서 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고종은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서 ‘불국사’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후 6.25때 소실되었다가 1965년 관악산 삼막사 주지스님이 부임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사찰을 둘러 보고 수질 좋다는 약수터에서 물병에 물을 채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산에는 약수터가 없어서 물은 필수다. 산길을 오른다. 얕은 산이지만 오르막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딱히 힘겹지 않은 것은 무수한 등산객 덕분이다. 등산을 하는 것보다는 매일 산책을 나오는 듯이, 산에 매우 익숙한 몸짓이라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지, 애완견 배설물에 대한 경고도 눈에 띈다. 원래의 목적은 대모산 정상을 거쳐 헌인릉으로 하산할 생각이었다. 분명 자료에는 산행코스가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헌인릉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무심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산이 있어서 습관처럼 오를 뿐이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된다.
구룡산 갈림 길을 앞에 두고 일단 대모산 정상으로 가보기로 결정한다. 헬기장은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구룡마을과 포이마을, 달터마을 등을 쉽게 가늠할 수 있고 강남 지역의 올림픽 주경기장과 한강이 보이고 날씨가 맑은 날은 서울특별시의 북쪽 지역까지 조망된다. 무엇보다 야경 사진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장소다. 대모산 정상까지 올라 곧추 내려오면 헌인릉을 만난다. 하지만 정보 부족으로 구룡산으로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헌인릉의 위치를 구룡산쪽으로 가늠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 외에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감행하고 있다. 오름과 내림이 있기는 하지만 능선 길이라 불국사쪽보다 훨씬 편하다. 숲이 우거져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심심치 않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구룡산은 대모산과 같은 줄기로 이어져 있다. 국가를 지키던 봉수대가 있어 국수봉이라고 불렸다.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으로 불리웠다는 전설이 흐른다. 그렇지만 구룡산 밑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구룡마을이 있다.
구룡산 정상에 발자국을 남기고 염곡마을로 내려선다. 의외로 이 길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약수터 팻말이 있지만 약수터도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다행이 민가를 암시하는 텃밭이 반긴다.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개발이 되지 않은 이유가 있는 땅일 게다. 농사일에 여념 없는 농부는 매우 친절하게 헌인릉(사적 제194호, 서초구 내곡동 산 13-1)의 위치를 가늠해준다.
한적한 염곡마을을 비껴 도로변에 서서 버스를 타고 헌인릉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서 능역 앞에 선다.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무수한 발품을 요구한다. 헌인릉은 동쪽에 헌릉과 서쪽의 인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릉은 세종 2년(1420)에 조성된,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봉릉이다. 왼쪽이 태종 능이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능역이 화려하다. 문화해설사를 찾았더니 금세 사람이 나타났다. 오르고 내릴 수 없어서 묘역 한켠에 의자 하나 놓고 상시대기하고 있었던 것.
해설사의 설명은 신경질적으로 이어진다. 날씨 탓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주워 듣는 정보는 제법 많다. 태종의 계모인,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이야기도 듣고, 세종의 아들 문종, 그리고 문종의 아들 단종으로 이어진다. 세종이 병약했던 큰 아들 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단종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세종 또한 장자가 아님에도 왕이 되지 않았는가? 본인처럼 셋째아들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세조 또한 그런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종서 문종의 측근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조선왕국이 사라질 상황이지 않겠는가? 그럴 듯한 해설이다. 역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또 인릉은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동원합봉 능이다. 원래 세종의 능이 있었던 자리다. 세종 능이 여주로 옮기면서 빈 능에 순조가 안치된 것. 순조는 정조의 2남으로 수빈 박씨 소생. 11세인 1800년에 즉위 34년간 재위했다. 재위기간 동안 외척들의 세도정치와 신유박해, 을해박해 등 천주교 탄압, 수재와 전염병, 홍경래의 난(1811년) 등으로 민심이 불안했다.

여행정보

○ 주소 : 서초구 염곡동, 강남구 포이동, 개포동 일대, 문의:서초구청 공원녹지과:02-2155-6870~74, 헌인릉 문의:문화행정과:02-2155-6200
*강남구에서 숲속여행 프로그램: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매월 1ㆍ3주 일요일과, 2ㆍ4주 토요일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약 2시간가량의 코스로 진행된다.
○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 → 양재IC → 양재대로 → 염곡사거리에서 우회전 → 염곡마을. 또는 수서역나 일원역 쪽에서 시작하면 된다.
○ 지하철 : 양재역에서 헌인릉 경유 시내버스 이용. 또는 수서역 4번 출구. 주차장 끝부분에 분당 방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조금 더 앞쪽에 수서교회 푯말이 서 있는 비포장 진입로가 있다. 진입로에 서서 보면 정면에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거기서부터 산길이 시작된다. 또 다른 코스는 개포 7단지에서 시작, 불국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수서동으로 내려오거나 양재동에서 시작, 구룡사-안부-정상을 거쳐 수서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 버스편 : 간선버스:440, 408, 462, 407, 일반버스:500-5, 직행버스:500-2, 마을버스:서초09. 염곡마을이나 헌인릉 하차
○ 맛집 : 나무골오리집(02-571-5252, 오리코스요리, 양재동 241-3 보성빌딩 지하1층), 놀부항아리갈비(02-573-0195~6, 항아리갈비, 양재동 1-28 1층), 무화잠(02-2057-0001, 대게, 킹크랩, 랍스터 요리, 양재동 2-3), 마오(02-571-8875, 북경오리, 훠궈, 양재동 96-8), 더스테이크하우스(02-546-5469, 스테이크, 양재동 89-2), 올리버3막19장(02-575-3432, 커피, 양재동 3-19) 등이 있다. 또 멋진 전통 한옥으로 이뤄진 필경재(02-445-2115, 궁중한식, 강남구 수서동 739-1)가 있다. 일원동과 개포동에는 본가(일원점)(02-445-9233, 우삼겹, 일원동 645-7 1, 2층), 황태칼국수(02-445-1411, 황태칼국수, 황태해장국, 일원동 645-5), 마포왕소금구이(02-3411-0274, 흑돼지오겹살, 전복구이, 개포3동 186-12 삼성빌딩 2층)등이 있다.

■글.사진 :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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