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가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본 법안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대규모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됐다.
법안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 등과 계약 체결시 서면계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납품업자 등에게 행하는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
특히 상품대금 감액, 상품수령 거부·지체, 반품, 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 상품권 구입 요구 등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대규모유통업자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또한 계약기간 중 납품업자 등이 매장의 위치, 면적, 시설 등을 변경하는 경우, 대규모유통업자가 일정 비용을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대규모유통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납품업자 등에게 불공정거래행위를 하는 경우 납품업자 등은 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을 신청, 의뢰할 수 있게 돼있다. 불공정거래행위 발생시 납품대금이나 연간 임대료 금액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배타적 거래 강요, 경영정보 제공 요구, 보복·시정조치시 명령 불이행 등은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징벌강도가 강화됐다.

대형유통업체가 입법 자초

유통시장 내 거래주체들 간 자율조정의 길을 당사자들이 아닌 국회가 개입해 만든 셈인데, 이로 인해 법률 제정을 통한 정부의 규제 개입 논란이 일고 있는 현 상황이 필자로서는 매우 안타깝다. 국내 유통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어 거래협상력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는 대형유통그룹들이 이 법의 입법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입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라 국회가 직접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경제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례적인 사건이다. 법안과 관련해 정부가 개별적인 사적거래에까지 관여할 필요성이 있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형유통그룹들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어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대·중소기업간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이 이루질 수 있느냐가 판단의 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높은 입점수수료, 불공정거래 등에 관한 수많은 신문보도는 실제로는 자유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공정거래·소비자편익 기여

대규모유통업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부 학자들은 “법으로 유통거래를 규정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없다. 잘못된 관행이 힘을 가진 소수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시장에서 함께 노력해서 수익을 냈다면 서로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진정한 자본주의인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잉규제로 인해 소비자 편익이 감소될 수 있다’는 논거는 전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현행 유통시장 내에서 대형유통그룹들의 우월적 지위는 중소납품업자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남용될 수 있다. 현행 시장구조 하에서는 대형유통그룹들이 물가를 자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이는 지역 중소상인들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 가격경쟁 측면에서 대응력이 없는 지역 중소상인들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경쟁을 하다가 하나둘씩 도태되기 마련이다. 결국 대형유통업자들이 그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상품가격을 올리게 되고 이에 따라 소비자의 편익과 선택권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위한 공정거래의 초석이자 진정한 소비자 편익을 위한 법적 인프라인 셈이다. 본 법안은 사적자치에 기반하는 평등하고 공정한 계약제도와 거래를 지원함으로써 공평한 사적이익을 보호하고 나아가 우리경제와 사회의 이익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이번 법 제정이 대규모유통업체와 중소협력기업간 공정거래와 동반성장의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소매유통업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익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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