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의 일교차가 커지는 듯 싶더니 하늘도 유난히 높고 맑아졌다. 가을이다. 정작 슬픈 일이 없는데, 그저 가을이라는 이유 만으로 슬퍼질 수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마음 한켠이 빈 공간으로 남아 알맹이가 빠져나간 듯, 허전하다. 낯선 장소의 커피숍에 앉아 향긋한 커피 한잔 놓고 생각없이 수다를 떨고 싶다. 부암동이 좋을 것 같다. 부암동은 조선 때는 성문 밖의 멋진 소풍장소였고 지금은 도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암동은 동쪽에 삼청동, 서쪽에 홍지동, 홍은동, 남쪽에 청운동, 옥인동, 북쪽에 신영동, 평창동과 접해 있다. 부암동이라는 지명은 부침바위(付岩)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이 바위에 자기 나이만큼 돌을 문지르다 손을 떼는 순간, 바위에 돌이 붙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흘렀다. 약 2m였던 바위는 도로 확장으로 지금은 없어졌고 그저 도로변 옆에 표시만 남겨 두었다. 부암동에는 제법 많은 문화 유적들도 흩어져 있다. 하지만 막상 부암동에 도착하면 어떻게 찾아다녀야 할지가 난감하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 오면 별 문제가 없는 동네지만 그렇게만도 할 수 없는 것이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구획을 정하지 않기로 한다.
우선 백석동천(명승 제36호, 부암동 115)을 찾아 나선다.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백석동천”이라 불렸다.
백석동천 인근에 ‘백사실 계곡’이 있다.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연산군 때 유흥을 위한 수각으로 세웠다는 세검정(서울기념물 제4호, 신영동 168-6)을 기점으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찾기 쉽다. 계곡을 따라 가다 우측 가파른 언덕에 있는 집 몇 채를 지나면 백사실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민가를 비껴서면서 작은 사찰 밑으로 폭포가 드러난다. 낙폭이 아니라 큰 바윗돌을 따라 흘러내린다. 수량이 많지 않아 비가 내려야 보기 좋다. 5분정도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백사 이항복 별서(별장)가 있었던 터가 나온다. 건물터, 연못, 백석동천, 월암 등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도심 속에 이런 한적한 등산로와 계곡이 있는 게 신기하다. 자연생태보존지역이라서 물놀이가 제한되지만 여름에는 그늘을 찾아온 사람들이 물놀이, 탁족을 즐기곤 한다.
백사실을 비껴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서울유형문화재 제26호, 부암동 산16-1)을 찾는다. 찾기 어렵지 않다. 이유는 석파정이라는 이름으로 멋진 한정식집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 위 건물이 석파정 별당(서울유형문화재 제23호, 부암동 16)이다. 석파정은 대원군의 아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석파정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홍지문(홍지동 산 4번지)이 있다. 홍지천 바로 옆에 있는 이 문은 숙종 41(1715)년에 세워졌다. 1921년 홍수로 허물어져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77년에 다시 세웠다. 홍지문은 원래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이라고도 한다. 탕춘대성(서울유형문화재 제33호, 홍지동 산4)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북한산성을 축성했다.
하지만 북한산성이 높아서 군량 운반이 어렵자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 일대에 군사를 배치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이 성을 축성한 것이다. 숙종 44년(1718)에 축성공사를 시작했는데 북한산 비봉에서부터 구기터널, 홍지문을 거쳐 인왕산 정상까지 약 4km가 된다. 세검정 일대는 조선시대 말고도 삼국시대부터 한산주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또 세검정 초등학교 내에는 당간지주(보물 235호, 신영동 218-9)가 있다. 신라시대에 지은 장의사에서 남겨 놓은 문화유적이다. 조선시대 이 자리에는 총융청(경기 일대의 경비를 위해 서울 사직동 북쪽에 설치했던 조선시대의 군영)이 있었다. 조선시대 5군영의 하나였다. 당시 총융청을 신축, 이전해 새로 지은 군영이라는 뜻으로 신영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자하문터널 위쪽으로 가면 창의공원(청운동 7번지 일대)이 있다. 공원에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언덕이 있다. 시인이 서시, 별헤는 밤, 또 다른 고향 같은 대표작을 쓴 시기는 1941년. 당시 만 24세, 연희전문학교 문과졸업반이었던 시인은 소설가 김송집(누상동 9번지)에서 하숙하면서 광화문이나 종로거리를 거닐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서시의 시비를 비롯, 가수 이승환과 그의 팬들이 기증한 소나무 10그루, 시를 새겨 넣은 돌계단 등이 있다.
이것말고도 부암동에서 문화충족을 하면 좋을 곳들이 있다. 수화 김환기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환기미술관(02-391-7701, 부암동 210-8), 자하미술관(02-395-3222, 부암동 362-21), 쉼박물관(02-396-9277, 홍지동 36-20)등이 있다.
그 외 옥천암 보도각백불(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호, 서대문구 홍은동)이 있다. 옥천암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알려졌다.
또 고종의 어머니이자 대원군의 부인이 아들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도 한다. 약 5m 높이의 고려시대의 하얀불상은 일명 ‘백불’ 또는 ‘해수관음’이라고 불린다.

여행정보

○ 주소 : 종로구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일원, 문의:문화공보과:02-731-1169
○ 자가용 : 광화문 → 경복궁역에서 청운동쪽으로 우회전해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부암동이다.
○ 대중교통 : 지하철 : 3호선 경복궁 역 하차 후 3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하차.
○ 맛집 : 자하 손만두(02-379-2648, http://www.sonmandoo.com, 부암동 245-2), 710another man(02-395-5092, 파스타, 부암동 293-9), 라비아(02-395-5199, 파스타, 부암동 258-4), 산모퉁이(02-391-4737, 카페, 부암동 97-5), 하림각(02-396-2442, 중식, 부암동 190-3), 치어스(02-391-3566, 치킨, 부암동 258-3), 클럽에스프레소(http://www.clubespresso.co.kr, 커피전문, 부암동 257-1), 석파랑(02-395-2500, www.seokparang.co.kr, 한정식, 홍지동125), 자하문(02-396-5000, http://www.jahamun.com/, 한정식, 신영동 5-5)등을 비롯 다수 있다.

Travel talk

○ 이상, 변동림, 김환기와 환기미술관 : 부암동의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1913년~1974년)의 부인인 변동림(김향안, 1916년~2004년)씨가 1992년 자비로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이다. 여기서 변동림씨는 이상(1910년~1937년)과 4개월 간 아내였다. 이상이 변씨를 만나기 전에 이미 잘 알려진 금홍(본명:연심)이 있었다. 금홍을 만난 것은 총독부를 그만둔 1933년. 그는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폐결핵 요양 차 화우 겸 문우인 구본웅과 함께 갔다. 그곳 술집에서 기생 금홍을 만났고 이상은 청진동 조선광무소 1층을 사글세로 얻어 ‘제비’ 다방을 차리고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 다방 뒷골목에서 금홍과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는 이상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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