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서울시장에 무소속으로 나선 야권의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이겼다.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 11곳 중 후보를 낸 8곳에서 전승했지만 서울시장 자리를 잃어 한나라당이 패배한 선거처럼 됐다. 서울시장 자리의 중요성과 그 무게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같이 전개,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등장해서 박근혜와 대리전을 치르는 모양새가 됐다. 안철수 돌풍의 위세는 감지됐고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세론은 타격을 입었다. 민주당이 입은 상처는 더 크다. 제1야당 민주당은 후보도 내지 못하고 무소속 후보를 ‘우리 후보’라며 지원했지만 조연에 불과했고 범(汎)야권 중심의 새로운 정당 창당 가능성도 비쳐지고 있어 승리에 웃을 여유가 없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기성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이 맞붙은 희한한 선거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치판을 뒤흔들고 위력을 발휘한 새로운 형태의 선거였다. 정당정치가 무장해제를 당한 셈이다. 민주정치는 의회정치이고 정당정치인데 정당정치를 통한 대의정치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그동안 의회정치는 떼쓰기와 기 싸움에 밀려 다수결 원칙은 실종됐다.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국민의 불신을 받았고 국민의 환심을 사서 표를 얻으려고 퍼주기 식 복지 보따리 풀기에 매달렸다. 예산이나 재정사정은 아예 따질 생각이 없다. 정치인의 가슴에 훈장이 번쩍이면 국민의 가슴은 멍들고 특히 국가부채를 갚아야할 청년들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정치인들이 신나는 놀음으로 쟁취한 훈장은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은 전리품이나 다름없다.

복지, 시대정신 자리매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제 편 가르기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을 배척하며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일은 접어야 한다. 사실상 정치활동을 한 안철수 교수는 이제 학자의 길을 갈 것인지 정치인으로 나설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게 옳다.
정치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든 지자체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어떤 일을 하려면 자원의 한계에 부딪힌다. 국가는 적자예산으로 일을 벌일 수 있지만 그건 결국 국가부채를 남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국채를 팔아 복지에 충당하다가 국가부도 상황에 이른 것이다. 능력 이상으로 일을 벌이다가 거덜 난 국가는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정부가 재정긴축정책을 들고 나오자 국민들은 긴축반대 데모를 벌인다. 그것도 주말에는 쉬어야하기 때문에 주중에 벌인다. 복지 보따리를 한 번 풀면 다시 졸라매기 어렵다는 걸 그리스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복지 보따리 풀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시대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몰리는 판국이다.

지속가능한 복지돼야

선거는 끝났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선거가 이어진다. 이기고 지게 돼있는 게 선거다. 경제전쟁은 선거와는 다르다. 모두가 살아남아야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마음을 한데 묶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매달려야한다. 복지를 외치기 전에 복지가 지속가능한가를 따져야한다. 지속 불가능한 복지는 나라 망하게 하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국민을 먹이고 살리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이다. 중소기업을 위한다고 하지만 말만 무성하고 알맹이가 없다. 대기업을 족치면 중소기업이 살 것이라는 착각도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정리해고자를 1년 이내에 재고용하고, 1인당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이들의 생계비를 지원하라는 내용의 한진중공업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했다. 한진중이 국영기업이 아닌데도 국회는 불법을 비호하고 노사교섭 관행 정착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잘못된 결정을 했다. 앞으로 노동자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사업장에서 제일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 문제를 풀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국회 결정은 그런 메시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경제의 먹구름은 몰려오고 있다. 급한 건 일자리 만들기와 능력에 걸 맞는 일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국가경영이다. 국민을 기만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정치는 끝내고 국민을 먹고살게 하는 그런 정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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